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혼자서도 헤매지 않고 잘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놓은 곳들이 있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시간이 생기면 틈틈이 그곳들을 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ME Time을 보내곤 한다. 이렇게 놀아도 일상이 크게 심심하지 않다.
혼자 시간 보내기에 익숙해진 나는
운동하기 위해 헬스장 두 군데를 다니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러 자주 가는 카페 몇 군데를 정해 놓았다. 폴댄스와 줌바댄스는 호기심 충족이 되는 선에서 멈추었다. 오래 질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것들을 남기고 정리했다. 글쓸 시간이 없어지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서.
그러면서 미루었던 그림배우기는 실행에 옮겼다. 주 1회 2시간은 괜찮은 것 같아서 화실에 다니는데 너무 집중이 잘되서 등록하고 대만족하는 중이다. 주중이 바쁘면 토,일에 가도 된다. 이렇게 주말을 활용해 원데이 요가를 하러 가기도 한다. 한 번씩 결제하다가 12회권을 등록해놓고 요가가 너무 하고 싶을 때 간다. 집근처에서 플로우 요가도 했었지만 그 수업 시간대가 한정되어 있고 금액이 너무 부담이 되서 조금 거리가 있어도 주말 원데이 예약이 가능한 요가 스튜디오가 대안으로 딱이다. 강도높은 시퀀스는 기대하지 어렵지만 몸과 마음의 에너지 전환은 확실히 된다.
요가 스튜디오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여기는 빌라건물의 1층 필로티 부분인데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고 출입구 반대쪽이 공원이라 바깥 경치가 다 보인다.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나무와 수변 공원 풍경이 보여서 이 장소에 머무는 동안의 느낌과 요가를 할 때 드는 묘한 특유의 기분이 있다.
약간의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공원을 산책하는 행인들도 이곳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처음엔 조금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수련에 집중하다보면 아무렇지 않다. 아침과 저녁수업 다 와봤는데 시간대에 따라 각각 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아침의 상승 에너지와 저녁의 차분한 느낌 모두 그 나름으로 근사하다.
한쪽에는 테이블위에 예쁜 화병에 꽂힌 꽃과 그 옆에 따듯한 차가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든다. 대접받고 환영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뜨끈한 차를 홀짝이며 잠시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10여분쯤 미리 가는 요령이 생겼다. 원하는 자리도 선점하고 차도 마시고 여유롭게 사진도 몇 장 찍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시간이다.
오랜만에 토요일 아침 9시 요가를 했는데 전신을 다 쓰는 동작으로 구석구석 이완을 시켰다. 밖으로 나오니 몸과 마음이 맑아져서 그런지 세상과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 가을의 절정을 지나 겨울이 오기 직전인 지금 남아있는 단풍들의 모습이 너무 소중해서 눈부셨다.
이미 앙상해지는 나무도 있고 아직 단풍이 완연한 나무도 같이 어우러진데다 가을 햇살이 한몫 보태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세상에~!" 혼자 감동하기 바빠지는 풍경이었다. 눈과 마음에 담고 사진에도 담아야지.
요즘은 이런 시간들이 다 내게 명상으로 다가온다. 그대로 관찰하고 그렇게 바라보며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이 오고가는대로 자연스럽게 둔다. 자연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또 깨달음을 주고 살아있어 이런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이런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등바등 살 필요가 뭐가 있나, 비교하고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할 일일까, 뭘 위해 그리 애를 쓰는가, 그냥 하루를 살자 단순하게.
감각이 다 예민해진 김에 맨발 걷기(요즘 Earthing이라고도 하더라는)도 해봤다. 차가운 땅의 감촉이 발바닥을 자극하니 정신을 더 깨어나게 해주는 것 같다. 살아있다. 지금 나는 깨어있다.
두 바퀴쯤 걸으며 아~ 좋다. 를 연발했다. 가을의 공기와 낙엽의 냄새를 맡았다. 이런 가을이 있는 계절을 살 수 있다는건 축복이다. 높고 푸른 하늘과 빨주노초의 천연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 나무와 자연이 벌인 축제를 공짜로 누리게 해주어 무한 감사!
내 안에도 단단하고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 키워야지.
다음주 발제할 그림책을 들고 단풍과 같이 사진에 담아 보았다. 그림책의 채색과 자연이 가진 천연 빛깔의 어우러짐도 근사하다. 아름다운건 보고만 있어도 충분하다. 굳이 뭘 끄집어내서 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으로 이야기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