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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an 23. 2023

13. 기술영업의 한계

임원, 만년부장, 대리점?

기술영업을 하다보면, 그 끝은 어디일까? 영업직무는 다른 직무에 비해 소위 말하는 스타, 즉 임원이 되기가 쉽다. 임원이 무조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영업은 돈을 벌어오는 부서고, 1년의 성과는 영업이 만드는 매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성과가 눈에 보이는 몇 안되는 직무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 큰 성과를 기여하는 대형고객사와 정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이 영업사원을 계속 데리고 있기 위해 계속 승진을 시켜주며 혜택을 주게 된다. 이때 단순히 고객관리 뿐 아니라 내부적인 보고 및 현재 임원진과 교류가 잘 되고 있다면 임원으로 올라설 수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면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별을 달지 못하고 만년부장으로 머무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어떤 영업사원은 별을 달아 임원이 되더라도 일부는 만년부장으로 머무르다가 대리점을 차려서 나가거나 치킨집을 하러 떠나게 되는 것이다.

기술영업의 진로(?)

대부분의 기술영업의 진로는 위처럼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20년이 넘도록 일하고 있는 우리 부장님을 보면 안타깝지만 임원이 되지 못하고 만년부장으로 전락한 케이스다. 최근 대리점사장으로 전직하시기 위해 어떻게든 갖고 계신 고객사와 연계하여 빠져나갈지를 고민하면서 나가게 되면 많이 도와달라고 하고 있다. 만년부장에서 대리점사장으로 전직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10년, 20년 후에 부장님의 위치쯤 되었을 때 똑같은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미리미리 다른 살 길을 찾아두고 싶어진다.


물론 고객과 조금이나마 관계를 쌓다가 갑자기 대리점을 차려 나가는 경우도 있다. 맡은 고객사 한 두군데와 관계가 좋아, 빨리 자영업에 눈을 뜨고 브랜드 한개뿐 아니라 나가면 팔 수 있는 브랜드가 많다는 점을 인식하고 본인의 역량에 따라 고객사에서의 점유율을 넓혀보려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잘되면 회사의 녹을 먹으면서 일할 때보다 배 이상으로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봤고, 기존에 하던 고객사에서 겨우겨우 명목만 이어가는 경우도 봤으니, 결국 대리점을 하더라도 본인 사업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전략을 수립해서 고객사에서 점유율을 높여 마진을 확보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만 대리점사장이 된다면 내 사업이 되기 때문에 개인시간을 들이더라도 내가 일한만큼 가져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므로 분명한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반면 회사는 안정적이고 벌이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벌이가 끝기진 않을테니까.


현재는 조만간 안정적인 벌이를 끊어내더라도 영업을 그만두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낸 시간이 부장님이나 위에 과차장님들 만큼 길진 않지만 항상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술 & 골프접대와 같이 개인시간을 할애한 접대문화: 술, 골프, 성접대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계속 함께하기에는 내가 썩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2. 알게 모르게 찔러주는 금품들과 비리: 절대 크고 대놓고 주는 경우는 없지만, 어떻게든 뇌물을 바라는 고객사도 있고 Give and Take를 원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영업이 너한테 안맞는거야 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뇌물과 비리로 얼룩진 관계가 얼마나 성심성의껏 오래갈 수 있을까?

물론 진심어린 선물과 호의는 반대급부로 고객과 정말 친해질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성향상 지속적으로 챙겨주는 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렵다.

3. 개인생활은 깡그리 무시하길 바라는 윗선: 가장 최근에 퇴사한 영업과장님의 말이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출장을 갔다가 이사와 부장이랑 저녁을 먹으면서 들을 말인데 너무 충격적이라 바로 다음날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사: 영업으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아? 첫번째로 친구를 버리고 두번째로 가족을 버려야 해.
부장: (끄덕끄덕) 그렇죠!

본인과 가족들의 소중한 시간을 버려가면서까지 영업으로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요새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그 의견역시 존중하지만, 개인의 신념과 가족들과의 시간을 버려가면서까지 성공을 꿈꾸진 않는다. 매일 골프만 치면서 회사에 성과를 들고 오지 않는 이사가 뱉은 말이라 더 충격적이긴 하지만 소위 이러한 행태를 고치기 위해서는 내부고발(Whistleblowing)이 필요하긴 하다. 외부에서는 이런 내막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최측근이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잘못됨을 느끼고, 사내 HR이나 믿을 수 있는 창구를 통해 내부고발을 하는 경우 회사가 급진적인 변화를 맞고는 한다. 솔직히 양면적이게도 내부고발을 할 용기는 없고, 대놓고 이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지도 않지만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영업의 모습은 기술력으로 압도하는 영업이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비슷한 제품은 아무리 많이, 싸게 만들어도 더 큰 자본력으로 눌러버리면 언젠가는 압도당한다. 하지만 수익을 꾸준히 연구개발과 R&D에 재투자하고, 시장에 맞게끔 개량해나간다면 가장 이상적일 듯 하다. 다만, 회사규모가 커질수록 임원진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연구개발 하나에도 시장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적인 자원배분과 업무지시는 필수적이다.


이미 비대해진 조직은 정해진 리소스를 우선순위와 경제성을 고려해 배분하려고 하고, 영업사원 하나하나가 영향력을 갖기엔 준비하고 넘어야할 산이 너무도 많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준비하고, 투자해보려고 한다. 똑같이 10년을 투자해서 회사에 중역이 되느냐, 내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내 일을 할 것이냐 했을 때, high risk임에도 후자를 택해보려도 한다. 그만큼 high return일테니까.


언젠가는 말로만 이상적인 회사의 모습을 들먹이지 말고, 진짜 내 회사에서는 남들과 다르게 이상적인 회사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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