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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폭싹 속았수다

그 시절, 예쁘고 똑똑했던 한 소녀에게

by 콩딘이 Mar 13. 2025

엄마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딸만 줄줄이 셋을 낳고도 기어이 아들이 갖고 싶어 마흔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봤다. 아빠가 그렇게까지 아들을 원했던 것도 아닌데. 막내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물었다. 그렇게 원했던 아들을 낳으니 좋으냐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하는 사람이야.' 엄마는 가족들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 말이 낯설게 들렸다. 엄마도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엄마가 여행에 욕심을 부리는 게 이해가 안갔다


엄마의 욕망은 주로 해외여행에서 발현됐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 집안 형편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엄마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부터 동남아, 유럽까지 줄기차게 해외여행을 다녔다. 집안 일이며 가게 일이며 눈코뜰새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무릎도, 손목도 쑤시고 아프다던 엄마는 해외에만 나가면 펄펄 날아다녔다. 하루에 1만보도 넘게 걸어다녔고, 시차 적응도 씩씩하게 해냈고, 낯선 해외 음식을 먹으면서 한 번도 한식을 찾지 않았다. 어떻게보면 억척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해외에 있는 동안 엄마는 모든 걸 다 해보고 가겠다는 결연한 각오에 차있는 사람 같았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이런 태도는 아빠와 함께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져 보였다. 적응되지 않는 시차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온 몸으로 이탈리아를 느끼고 있었다. 골목 골목 작은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소품을 구경하는 걸 즐겼고, 맛집 앞에서 오랫동안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고 싶어했고,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미술 작품들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따라다니며 들었다. 엄마보다 한참 어린 나와 남편이 고된 일정 때문에 녹초가 돼 버렸을 때도 엄마만은 반짝이는 눈빛과 튼튼한 다리로 오히려 우리를 독려했다.


한국에 돌아와 얼마 전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보게 됐다. 극 중에는 1969년생, 딱 우리 엄마 또래의 금명이 등장했다. 금명은 왜 이리 신발을 많이 샀냐는 엄마의 잔소리에 이렇게 대꾸했다. "없이 커서 그런가 그냥 계속 뭘 사고 싶어. 샘은 많은데 돈은 죽어라 없고, 죽어라 갖고 싶은데 죽어도 못가지면서 크니까 지금은 조금도 참기가 싫어." 그 장면을 보며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싶어서. 첫 아기인 나를 만나기 훨씬 이전의 우리 엄마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나를 만나기 전 엄마는 이쁘고, 똑똑한 소녀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는 종종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를 데리고 나가곤 했다. 그때 엄마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얘, 너희 엄마가 얼마나 공부 잘했는지 알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진짜냐며 눈이 동그래져 엄마를 쳐다봤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 친구의 말처럼, 엄마는 진짜 똑똑한 사람이긴 했다. 채소 행상을 다니는 집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만 줄줄이 넷이라 고등학교까지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학 나온 남동생들보다 훨씬 풍족하게 살고 있는 보면 말이다.


대학에 대학원까지 나온 자기 자식들도 여전히 엄마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맏딸인 나는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요령을 아직까지도 엄마에게 배운다. 딸기를 살 땐 어떤 딸기가 맛있는 딸기인지, 속옷은 어떻게 빨아 써야 깨끗한지 등등. 그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외우는 것도 잘한다. 이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도 지도 앱 없이 한 번 본 길이나 가게를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엄마를 보고 남편이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젊었을 때 엄마는 이쁘기도 참 이뻤다고 들었다. 부모님 일 때문에 내가 외갓집에 잠시 맡겨졌던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어렸을 때 연예인 시켜주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참 많았었다고. 또 한 번은 엄마랑 마트에 갔다가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뒤에 있던 할머니가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아가, 너는 너희 엄마가 참 이뻐서 좋겠다. 너희 엄마 꼭 연예인해도 되겠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할머니를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이쁜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람. 차라리 나를 이쁘다고 해주지.


물론 엄마가 이뻐서 좋았던 순간도 있긴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부모 면담하는 날이 그랬다.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오는 날, 그 날이 되면 반 친구들은 모두 우리 엄마를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너희 엄마 너무 이쁘시다고. 그날만큼은 엄마도 누구보다 이쁘게 꾸미고 학교에 나타났다. 나도 집에 와서 엄마에게 그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음엔 더 이쁘게 하고 오라고 했다. 그때만큼은 내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확실히 우리 엄마는 그때 어느 누구보다 이뻤다.


내가 태어나고 엄마는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


엄마는 나를 갖자마자 바로 아빠와 결혼했다. 결혼식을 올린 후 7개월만에 내가 태어났으니 내가 생겨서 결혼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덜컥'을 담당했을 나로 인해, 그녀가 포기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때 엄마 나이가 겨우 스물 셋이었으니까. 물론 함부로 엄마의 인생을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남매를 키우는 내내 엄마는 분명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 하나를 가지면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똑똑하고 이뻤던 엄마가 포기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명절을 앞두고 몸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시골에 없었을 때가 있었다. 결국 아빠는 동생들만 데리고 가고, 엄마는 서울 집에 나와 함께 남아있기로 했다. 명절 당일 저녁, 엄마는 내게 몸이 괜찮아졌으면 맛있는 먹으러 나가자했다. 엄마가 그날 데리고 곳은 명동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밤의 명동. 길거리에서 물건이나 음식을 파는 행인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쇼윈도의 불빛이 반짝거리는 화려한 거리였다. 어지러운 불빛 속을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천천히 걷는데, 갑자기 구토가 밀려왔다. 참지 못하고 길바닥에 토를 해버렸다. 엄마는 너무 놀라 당장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말렸다. 명동에 왔을 때, 엄마 표정이 너무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도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괜찮은 척하며 좀 더 놀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의 나이가 겨우 20대 후반이었다.


이제는 엄마의 욕심을, 조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의 욕심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자로서 20대, 30대를 지나면서 그 시절 어렸던 엄마가 포기하며 살아왔던 것들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 어렸을 때는 가난 때문에, 커서는 자식들 때문에 하고싶었던 것도 먹고 싶었던 것도 가고 싶었던 곳도 늘 미루면서 살아왔을 거였다. 그러니 여전히 못해본 것들에 대한 갈망은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반면 나는 엄마의 희생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라올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걸 먹었고, 하고 싶은 걸 했다. 좀 더 자라서는 여행 역시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것이 돼버렸으므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의 그 나이들을 지나고보니, 참 많이 수고하셨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다. 이제는 그 이쁜 얼굴도, 똑똑하고 총명했던 시절들도 다 지나보냈던 한 사람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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