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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Apr 18. 2024

초등 퇴직교사 분투기

2회 2022년 11월 8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출근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은 가빠졌고 머릿속은 텅 빈 느낌이었다. 출근 준비하는 아내에게 나의 상태를 말하니 교감에게 오늘 출근은 어렵다고 문자를 넣는 것은 어때? 하고 말한다. 교직 33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다. 심장이 가쁘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손가락은 교감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 오늘 너무 힘들어 출근을 못할 것 같습니다. 병원을 갔다 와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곧이어 교감의 답장 문자가 도착했다. " 예,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9시에 인근 초등학교의 1교시 시작종 소리가 들렸다.

지난 2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급한 학급 일을 처리하고 거의 매일 조퇴했다.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도 없었다. 출근할 때 느꼈던 감정들... 가을의 화창한 날씨와 다른 나의 기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을 매일 만나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담임교사로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과 좋을 때도, 별로 일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요즘은 최악이다.


이제 나이를 먹어 업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변명은 그때의 나의 심정에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그냥 넘어갔던 일들이, 그때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너무 싫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우리 반과 옆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탁구 스포츠 클럽을 시작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가장 기대가 컸던 ^^이를 주장으로 임명하고 20명 가까운 아이들과 매일 아침 1시간씩 탁구를 했다. 탁구 초보인 4학년 아이들과 스포츠클럽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새로운 경험을 맛보게 하겠다는 나의 목표는 엉성한 학급운영과 아이들의 버릇없음으로 처참히 무너졌다.


나의 꼼꼼하지 못한 학급운영은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을 더욱 들뜨게 했다. 매일 벌어지는 아이들끼리의 다툼, 과학시간에 실험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의 장난, 매주 1시간의 독서 시간에 벌어지는 장난, 탁구 클럽 주장인 승엽이의 반항적 행동들은 나를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명퇴 생각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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