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 Apr 29. 2024

초등 퇴직교사 분투기

5회 2024년 4월 26일(금) 2

목요일, 금요일 내가 도덕 강사로 출근하는 사대부초는 1교시 수업이 8시 20분이다. 6시경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7시에 집을 나선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로5가역에 내려 걷거나 마을버스를 탄다. 이 날은 조금 빨리 나왔다. 교문을 들어서니 사대생들이 무더기로 통과한다. 400명이 한꺼번에 1주일은 초등학교에서 참관 실습을, 1주일은 중학교에서 수업 실습을 하기 때문이다. 정장 차림으로 삼삼오오 지나가면서 학교 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학교 안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참관 실습은 비록 0.5학점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1교시는 5학년 생활부장 반 수업이다. 3월 22일(금) 처음으로 5학년 수업을 할 때 반 아이들에게 나를 정식으로 소개한 부장교사이다. "선생님으로 오랜 시간 근무하셨고 도덕 수업을 매우 잘 가르치는 분으로 유명하신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학교에서 특별히 모셔왔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열심히 하기 바랍니다"하면서 반장에게 인사를 시켜서 인상 깊었다. 교대 6년 후배 교사로 학교에 갈 때마다 인사하는 사이로 개인적인 이야기도 자주 하는 관계가 되었다.


교실 뒤에는 5명의 참관 실습을 하는 사대생들이 앉아있다. 참관록에 교사와 학생들의 장면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수업 ppt를 띄워놓고 1차시에 배웠던 자극-감정-욕구를 복습했다. 오늘 2차시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왜 이런 감정이 일어났는지 사실을 확인한 후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는 것이 학습목표라는 것을 설명한다. <화>라는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다만 이런 화를 나와의 관계를 깨트리는 것이 아닌 알맞게 표현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의 관계를 단단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수업 전개 과정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다.


수업은 사대생들에게 부탁하여 아이들에게 버츄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여러분이 뽑은 카드를 자신만 읽어보고 교과서 밑에 놓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 자신이 뽑은 인성 덕목을 크게 외치고 일주일 동안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뽑은 카드가 <오늘의 나의 pick>입니다. 알았죠?"

이렇게 시작한 후 8박자 손유희를 했다. 두 손을 모으고 1~8까지 하나, 둘 하면서 8번 째는 박수로 끝난다. 먼저 교사 시범을 따라한 후 1번 연습한 후 <학교종이 땡, 땡, 땡> 노래를 불렀다. 뒤에 앉아 있는 사대생들에게도 함께 해주기를 부탁하니 웃으면서 열심히 한다. 기억력 게임이라고 하면서 <도덕의 德>의 뜻을 새겼다. "덕이 무엇이지요? '라고 질문하니 눈치 빠른 학생이 부초 배움 공책인 플래너에 썼던 내용을  "'덕'이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할 리'로 효도, 예의, 존중, 배려 등을 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미덕들을 배우는 것이 도덕 과목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도덕은 중요한 과목인가요? 아닌가요?"라고 질문하면 아이들은 "매우 요한 과목입니다"라고 크게 외친다.

도덕 강사인 나는 행복했다.

이후 <도덕은 인성이다>, <인성은 실력이다>, <인성은 나의 미래다>라고 크게 외치게 하면서 차시 수업 내용으로 들어간다.


2단원은 감정, 욕구와 관련된 내용이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다만 감정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마음속에 쌓아두기보다는 알맞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담임으로 도덕을 지도할 때는 필요 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1시간 있는 교과로 교재 연구할 시간도 없고 아이들도 다 아는 내용이고 수행평가나 시험을 볼 필요가 없는 과목이며 차라리 사회나 국어에 통합되는 것이 나은 허접한(?) 교과로 치부했다.  부끄럽다.


그러나 도덕 교과는 초중등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어떤 과목이냐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사회감성학습,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교육으로 빈번한 총기사건, 학교폭력, 문제행동 등에 대한 대안으로 흑인 정신과의사가 개발한 교육이다. 유튜브에 관련 자료들이 많이 있다. 그중 유명한 김현수 정신과 의사가 작년 인천교육청에서 강의한 내용이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이 있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김현수 박사는 학생 문제행동, 경쟁입시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감성교육>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분은 대안학교를 설립하기도 각종 사회적 재난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 등을 힘써 온 분이다. 정말 훌륭한 의사이다.


작년 1년 동안 퇴직 후유증을 제대로 겪었다. 비참함, 무기력함, 공허함 등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했다.

올해 우연히 교육청 강사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도덕 시간 강사를 구한다는 사대부초의 공고문을 보고 "바로 이거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자리야!"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도덕 교과를 가르치는 것은 나를 치유하는 <올해 나의 Pick>이 되었다.


*<사회감성교육>

한국인간관계연구소 | 학생의 사회적 관계, 왜 가르쳐야 하는가?(교육정책네트워크 자료 옮김) - Daum 카페

이전 06화 초등 퇴직교사 분투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