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에 피어난 장미

by 남궁인숙

8천 년 전부터 운영되어 오던 조지아의 와이너리를 구경 갔다가 포도밭에 장미가 심어진 것을 보았다.

포도밭 끝자락에 유독 눈에 띄는 장미들.

그것을 단순한 장식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포도밭의 끝줄에 심긴 장미는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이며, 시간과 자연, 인간의 손길이 맞닿는 상징이었다.

장미와 포도는 식물학적으로 비슷한 병해에 걸리기 쉬운 속성을 공유한다.

장미는 포도나무보다 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밀듈병이나 오이디움 같은 곰팡이 병해에 먼저 증상을 드러내며 포도나무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알려준다.

그것은 마치 긴 잠에서 먼저 깨어나 주변을 살피는 파수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짐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온몸으로 알리는 존재이다.

장미의 붉거나 노란 꽃잎이 시들어가는 그 미세한 변화는, 포도밭 한 해의 작황을 결정짓는 중대한 신호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포도밭의 장미는 단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포도와 인간을 잇는 ‘자연의 경고등’이다.


장미는 토양의 pH, 배수 상태, 양분 부족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장미의 생육 상태를 통해 토양 문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장미는 유익한 곤충(예: 벌, 무당벌레)을 끌어들이고, 일부 해충을 장미가 먼저 유인하여 포도는 해를 덜 입게 된다.

해충이 장미에 먼저 모이면 방제 계획을 세우기 용이해진다.


또한 장미는 품종의 경계를 가르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광활한 밭에서 서로 다른 포도 품종을 구분하는 경계에 장미가 심겨 있는 경우, 그것은 기능성과 감성을 모두 갖춘 경계선이 된다.

한 품종의 끝과 다른 품종의 시작, 혹은 동일한 품종이라도 땅의 결이나 햇살의 방향이 달라지는 지점에 장미는 자리를 잡는다.

이름 없는 기준점이지만, 세심한 농부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흙의 숨결을 읽는다.



와이너리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포도밭에 장미를 심는 건, 이곳이 단지 술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생명을 가꾸는 곳임을 말해주는 일입니다.”

장미는 말이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포도밭의 품격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삶이란 때로 포도밭과 닮았다.

오랜 기다림과 손길 끝에 열매를 맺고, 그 수확 앞에서 조용한 기쁨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곁에 장미처럼 피어 있는 존재들이 있다.



장미는 포도밭에 아름다움과 감성을 더하는 존재이다.

질서 정연한 포도넝쿨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노동의 공간을 예술의 공간으로 바꾸며, 포도밭을 찾는 방문객에게는 마치 풍경화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곧 농장의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며, 와이너리 투어나 시음 공간의 분위기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어 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의 전통 와이너리에서는 이러한 감성을 매우 중요시하며, 장미는 그 상징적 연출의 중심에 놓인다.

특히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장미가 전통 와이너리의 상징이라고 한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환대의 이미지를 준다.

나아가 장미는 때때로 포도밭에서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리듬을 상징하기도 한다.

포도는 결실을 맺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장미는 계절을 먼저 앞서 피고 지며 그 흐름을 예고한다.

포도밭의 끝에 피어 있는 장미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존재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다.


장미는 포도밭의 끝줄이나 특정 품종 구역의 시작점 또는 종료점의 표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넓은 포도밭에서 품종 간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장미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기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밭의 체계적인 관리와 작황 비교에도 도움을 준다.

이렇듯 장미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포도밭이라는 생명의 현장에서 다층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반자다.

병해의 조기 탐지자이자, 품종 구분의 표식이며, 시각적 아름다움의 창조자이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포도밭의 가장자리에 피어난 한 송이 장미는 말없이 그 밭의 품격과 정성을 대변하고 있다.



“장미는 포도보다 먼저 아파서,

포도를 지켜주는 정원사입니다.”


- 프랑스 보르도 지역 농부의 말 -



https://suno.com/s/2bzDOl5zhlQmNjQ4



포도밭의 장미


작사: 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햇살 머무는 언덕 위

초록 물결 출렁일 때

그 곁에 핀 조용한 장미

한마디 말없이 바라보네


2절

먼저 아프고 먼저 시들어

그대 상처 대신 받아 안고

붉은 꽃잎에 숨긴 마음

바람 따라 흩날리네



나는 장미, 포도밭 끝에서

당신을 지키는 꽃

아무도 모르게,

먼저 아파주며 살아가는 이름


나는 장미, 그늘진 사랑으로

당신을 지켜온 날들

열매 맺는 그 순간까지

조용히, 곁에 피어나요


3절

계절이 변해도 나는 여기

덩굴의 노래를 듣고 있어

흙냄새 속에 남긴 약속

지켜야 할 이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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