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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23. 2022

괴담을 사랑하는 어른

괴담은 짜릿하고 훈훈한 긴장을 만든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자제하는 편이지만, 몇 차례 만나 친분이 조금 생겼다고 느끼면 꼭 한 번 묻는 게 있다.

“혹시 귀신 본 적 있어요?”


대략 80% 정도의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없다고 답하는데 의외로 20%의 사람들은 본 적이 있다고 답한다.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경험담을 술술 털어놓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바로 이 20%의 소득에 환호한다. 귀신 이야기에 환장하기 때문이다.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 건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내 또래라면 기억할 만한 토요 미스터리나 전설의 고향, 드라마 M 등의 공포 프로그램이 어린 나의 심금을 울렸다.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제작된 공포 이야기책도 학교에서 꽤 유행했다. 책을 잘 사주지 않으셨던 우리 부모님에게 공포 이야기책을 얻어낼 가능성은 0%였다.


그래서 나는 공포 이야기책을 가진 친구에게 자잘한 아양을 떨어가며 빌려 읽곤 했는데 늘 아쉽고 부족했다. 뭐랄까, 좀 더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를 일부러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추느라 덜 무섭게 적은 내색이 확연하달까. 그런 구석이 느껴지면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다랐을 때, 학교에 부잣집 딸내미인 친구가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이거 진짜 재밌어. 꼭 읽어봐.”


그 책은 내 괴담 인생의 본격 서사를 열었던 퇴마록이었다. 친구는 부잣집 딸내미답게 퇴마록 전편을 갖고 있었다. 당시 도서대여점이 동네마다 성황이었는데, 퇴마록은 도서대여점에서 예약을 걸어놓고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퇴마록 전편과 후속 편을 모조리 빌려 읽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퇴마록에 등장하는 월향검이 갖고 싶었고, 준후처럼 결계를 쳐보고 싶었다. 친구는 승희처럼 똑똑한 퇴마사를 꿈꿨다. 퇴마록을 읽으며 늘 부족하고 아쉬웠던 괴담 용량은 즐거움이 넘실거렸다.


이후 TV 프로그램에서 납량특집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고, 학교라면 어디든 존재하는 괴담을 즐겼다.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연필 하나를 잡고 귀신을 불러내는 놀이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게 강령술의 일종이었음을 인지했다면 아마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괴담은 즐거움이었다. 내내 괴담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성장 속도와 괴담의 여유는 비례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TV에서 납량특집이 줄기 시작했고 친구들끼리 분신사바를 하는 일도 당연하다시피 사라졌다. 미래의 남편 얼굴이 보고 싶다며 엉뚱한 일을 벌이는 일도 학창 시절과 함께 종료됐다.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를 친구들은 철이 덜 든 아이 보듯 웃어넘겼지만, 다들 몰랐을 터다.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괴담을 좋아하는지 말이다. 스무 살을 넘기고, 또 20대의 중반과 후반을 넘기며 다 자란 여성이 괴담이나 파고 다니는 건 철이 덜 든 미숙한 사람의 표상인 듯했다. 물론 나는 스스로 철든 어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런 평가에 동의했지만, 그럼에도 학창 시절을 다 보낸 성인은 좀 더 점잖아야 할 것을 요구받는 기분이긴 했다. 귀신 이야기나 파고 다니는 아이 같은 구석이 더는 어울리지 않는 어른의 생이었다.

이런 나의 괴담 인생을 안타까워한 남편이 인터넷에서 유명한 괴담 사이트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다양한 도시 괴담을 모아둔 사이트였는데, 그것을 찾아준 남편의 자랑스러운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남편의 성의를 봐서 조금 읽긴 했는데 좀체 재미가 없었다. 왜일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가득한데, 흥미진진한 샤머니즘이 펼쳐지는데 왜 재미가 없을까.


그건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긴장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괴담의 짜릿함을 타인과 나누는 즐거움이 배제되고 글자로 전달하는 괴담은 너무 냉랭하다. 물론 괴담이 포근하고 훈훈한 일도 거의 없지만, 타인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주고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공포를 즐기는 순간엔 분명 온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몇 해 전부터 안면을 익힌 사람에게는 꼭 한 번쯤 귀신 본 적 있느냐고 묻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20%의 사람은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반대로 내게 경험담을 묻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 희미하게 사람 아닌 것을 본 적 있는데 그 경험을 곧잘 이야기한다. 그러면 상대와 나 사이에 아주 짜릿하고 흥겨운 긴장이 형성된다. 그 감정이 친분으로 이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친한 언니로부터 갓 8살 된 자녀가 귀신 이야기나 괴담 이야기책을 좋아해 걱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나이가 괴담에 끌리고 호기심이 생길 만한 나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해하면서도 너무 빠져들까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어린아이가 괴담을 좋아할 수도 있고, 빠져든다 한들 고작 괴담 좋아하는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괴담 좋아하던 아이가 괴담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묻는 것이다.

“혹시 귀신 본 적 있어요?”

생각보다 귀엽고 훈훈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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