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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17. 2022

그리운 이들을 만나는 나만의 피서법

그들이 무탈하고 무해하게 살아가고 있음의 확신

오랜만에 고향에 갈 일이 생겼다. 인터뷰하러 가는 자리였다. 인터뷰 장소를 고지받고 지도에 검색해보니 익숙한 지명과 익숙한 길목이 펼쳐졌다. 따져보니 십 년 가까이 가지 않은 옛 동네였다. 모교가 있는 일대였다. 근처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다음 주에 인천 가는데 시간 맞으면 점심 먹을까?”


친구는 그날 외근이 많아 약속을 확정할 수 없다며 그래도 시간대가 맞으면 커피라도 한잔하자고 했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할 때는 마음대로 시간을 조각낼 수 없다. 


친구 의견에 수락하고, 그날은 일찍 전철에 몸을 실었다. 용산에서 동인천 급행으로 갈아탄 후에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조금 놀랐다. 내가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절에는 없던 열차였다. 얼마 전 봤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생각났고, 정거장을 수없이 세고 나서야 우리 집이 나오던 시절을 떠올렸다. 


신도림과 구로를 지나고 나니 열차는 띄엄띄엄 인천의 중간을 가로질렀다. 가로지르는 도중에 다니던 중학교가 있는 제물포역을 거쳤고, 오래 다녔던 학원이 위치한 주안역도 지났다. 그 시절 전철요금은 300원이었는데 요금이 오르는 동안 나도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그곳에는 우리가 즐겨 다니던 떡볶이 골목이 아직 있을까. 수업이 끝나고 함께 구경하고 떠들던 대형 문구점은 아직도 있을까. 좁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만화책을 보면 만화방의 흔적이나마 있을까. 생일파티를 하던 패스트푸드점도 여전할까. 

그 시절을 함께 하던 친구들의 이름과 안부가 떠올랐다. 언젠가 여자들의 우정은 얄팍하다고, 결혼하면 친구들 다 끊어진다고 떠들던 낭설이 있지 않았던가. 그건 정말이지 낭설이었다. 친구들은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고 잠이 모자라 힘겨워했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학교를 들어갈 만큼 큰 다음에는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왔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열차 창문으로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의 나와 친구들 모습이 시간 순서에 맞춰 등장하는 파노라마처럼 흘렀다. 이렇게 한 번씩 옛 생각이 날 때면 나는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것이다.


동인천역에 내려 인터뷰 장소를 향해 10분 정도 걸었다. 그래도 수업이 끝나면 교복 입은 아이들이 거리를 꽤 메웠던 곳인데, 평일 낮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제 인구가 줄어든 건지 인도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길을 잘못 온 건가 싶어 지도앱을 계속 눌러봤지만 길이 틀리진 않았다. 걷다 보니 처음 보는 고층 아파트도 보인다. 새삼스러워 입이 벌어졌다. 어릴 때부터 자주 오가던 길목에는 처음 보는 아파트와 나이 든 내가 있고, 친구들의 환영이 너울거렸다.


인터뷰는 평소처럼 진행됐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인사를 하고 나왔다. 다시 동인천역으로 향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친구도 외근이 끝났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며 반색했다. 혹여나 업무에 방해될까 전화를 망설였는데, 안 했으면 큰일 날뻔했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친구를 기다렸다. 내가 발길을 하지 않는 동안 지역은 너무나 낡았고, 그 와중에 내가 들어간 카페는 생긴 지 얼마 안 됐는지 깨끗하고 보송했다. 어쩌면 집에서 출발해 이곳에 오는 동안 느낀 생경함과 옛 기억은 나와 친구들 사이의 거리를 말해주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제 각자의 삶이 중요하고 책임질 게 많아지는 바람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면 부러 애를 써서 시간을 내야 하는 때가 왔다. 그 시절에는 가진 게 지갑 속에 오천 원이라든가 새로 산 젤리펜이라든가 그런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가진 것도 책임질 것도 제법 많아졌다. 

그게 나와 친구들 사이에 놓인 거리와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나 역시 한 번씩 인천에 오는 날에야 겨우 얼굴을 비추는 처지고, 친구들은 일 년에 한 번쯤 자녀를 동반해 얼굴을 비추는 처지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던 떡볶이는 어쩌다 먹어야 한 그릇을 겨우 비울 수 있고, 공부하기 싫어서 학원 수업시간에 딴생각이나 하고 쪽지나 쓰던 우리가 이제는 자녀의 학원비를 내는 세대가 됐다. 그 당연한 새삼스러움에 나는 잠시 먹먹했다. 그때 초롱, 하고 카페의 문에 달린 풍경소리가 들린다.

“야! 나 왔어!”


마스크를 썼지만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친구가 손을 번쩍 들고 걸어온다. 친구는 여전히 목소리가 커서 날 부를 때 카페 안에 모두가 날 쳐다봤다. 자리에 앉자마자 서로 2년치 이야기를 압축해 전달하느라 바쁘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가 싶었는데 2년 전이란다. 다행히 친구는 건강해 보였고, 탈 없이 밝았다.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나니 어쩐지 안도하게 됐고, 낮시간 나를 괴롭혔던 무더위가 삭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안도한 걸까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내 소중한 친구들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하며 그들이 무탈하고 무해하게 살아가고 있음의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번씩 무더위를 삭히는 게 내가 친구들을 사랑하는 방법이자 마음의 피서법 아닐는지. 


헤어질 때는 다음을 기약했다. 늘 그렇듯이 자주는 못 보겠지만 서로 무탈하기를 기원하며 다음 만남까지 튼튼하게 지내기를 약속한다. 책임이 주렁주렁 열린 일상에서 서로에게 넉넉한 시간을 빼자며 다음 계절을 논의한다. 친구를 보내고 다시 전철역으로 향하는 마음이 한없이 가볍다. 깃털 위에 누운 듯하다. 다음 계절에 만날 때까지 나의 친구들이 무더위를 털어내고 튼튼하게 일상을 건설하길 오늘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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