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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Sep 28. 2023

달빛 한가위

닭카와 함께한 연휴 시작

 한가위가 찾아왔다. 모두가 기다렸을 기나긴 연휴의 시작, 살짝 덥게도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가을날이었다. 고요한 추석 연휴 첫째 날, 시골 동네는 귀뚜라미 소리만 울려 퍼지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내는 바람 소리만 날릴 뿐, 유독 조용하다. 동네 구석구석 늘어난 차들을 보고 나서야 명절은 명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땐 동네에서 명절이면 노래 대회도 하고, 회관에서 모여서 윷놀이도 했었다. 그러다 명절이 동네의 행사에서, 육촌, 사촌 화합의 장, 대가족 행사에서, 모이는 단위가 조금씩 작아지더니, 지금은 가족 단위의 소소한 행사가 되고 있다. 명절에 모이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한다면 가족의 범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생각에 다다를 때, 할머니들이 모여서 말씀하시곤 했던, ‘우리가 가면 이제 이런 모임도 없을 거야. 우리가 마지막이야’ 하는, 그런 씁쓸할 대화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명목상 청년회에서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명절마다 걸곤 하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그냥 내가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면서 삶의 많은 것들이 익숙해져 버린 것처럼 명절이 재미 없어졌나 싶기도 하지만, 할머니도 예전 명절에 비해 요즘 명절이 재미는 없다고 하신다. 예전엔 눕는 것은 꿈도 못 꿀만큼 음식 장만 하랴, 손님들 맞으랴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바빴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만큼, 웃음 나올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지금 고요한 명절도 좋긴 하다. 명절이 간단해지면서, 중간 중간 할 일들을 하면서 낮잠을 즐길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명절 첫날 아침에 일어나 장을 보고 가을햇살 맞으며 다 같이 오손도손 아침 낮잠(?)을 자는데 기분이 좋았다.


점점 고요해지고, 그 고요함에 익숙해지고 있는 명절이라지만, 이번 명절은 조금 특별한 점이 있었다. 닭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차량도 취득했기 때문. 닭은 몇 달 전부터 운전을 시작했는데, 뚜벅이 우리 집에서 최초 운전자 탄생이었다. 나도 사실 면허는 있고, 심지어 닭보다 훨씬 일찍 취득했지만, 장롱면허가 된 지 오래고, 운전은 아직 까마득한 상황이었다. 닭네 직장에서 자동차의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어 최근 자가용을 몰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명절 장을 닭카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보운전 닭카는 아직은 우리 지역 안에서도 정해진 곳들(닭 직장, 마트 등)만 다닐 수 있어서 사실상 버스정류장 코스나 다름없다고 내가 깐죽거리기는 하지만, 이번 장에서  닭카는 진가를 발휘했다. 전통시장 주차장에 무사히 주차하고, 시장을 봐서 트렁크에 넣고, 오는 길에 마트를 들러 또 장을 보고, 자가용의 힘은 엄청났다. 할머니는 일평생 택시, 버스만 타고 다니시다 드디어 자가용의 편안함을 누리고 계신다. 닭이 출근하면 늘 무사히 출근했는지 전화해서 확인하실 정도로, 할머니의 근심거리가 하나 늘긴 했지만, 뭔가 가족이 함께 레벨 업한 기분이 든다. 외식, 여행, 자가용, 남의 가족 일이 우리 가족일이 되어 가고 있다. 닭은 늘 이렇게 뭔가 먼저 개척하고, 나는 이미 닭이 어느 정도 닦아 놓은 길을 걷곤 한다. 첫 시작을 도와줄 어른은 많지 않지만, 닭은 용감하다. 늘 투닥거리기는 하지만, 다음 생에도 동생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마찬가지로 동생 역할을 하고 있는 누군가와 공감하며 말하기도 했었다.


장에선 할머니가 대장이라 대장님을 졸졸 따라다니고, 할머니는 이번에도 손녀 번듯하게 둘을 잘 키워서 보람이 있지 않냐는 아는 할머니들의 칭찬을 들으시고(할머니는 꼭 그런 말엔 내가 한 건 없고 애들이 착해서 잘 컸다고 답변하시고). 돌아와서는 빨래하고, 낮잠 자고, 전 부치고, 함께 하니 명절 준비도 금방이었다. 시골집에 누워 있으면 창문으로 둥그런 달이 보인다. 창문을 열어두면 환한 달이 방안을 비춘다. 사진 찍으면 공포 분위기로 찍혀서 아쉽긴 하지만, 달빛을 듬뿍 받으며 자고 싶은 그런 추석 연휴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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