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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May 07. 2024

에필로그

처음으로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아.


 J와의 사랑이 끝났다.


한때는 그와 헤어지면 절대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믿었었는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후회하며 밤새 소리 죽여 우는 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최선을 다한 기분이었다.


 내 삶에서 무언가 정말 죽도록 열심히 해 본 것이 있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건 J와의 사랑이었다고.


 처음에 내가 화가 나서 울컥한 거라고 생각해서 장난스럽게 반응했던 J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는지 다시 연락이 왔다. 우리 동네까지 찾아왔지만 상황이 바뀌지 않자 그는 그제야 이별이 진짜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헤어지고 한 1년 정도는 꽤 꾸준히 연락이 왔다.


 토익시험이 900점을 넘었을 때, 학기 내내 성적이 좋아 올 A를 받았을 때, 좋아하는 랩을 하며 한강에서 버스킹을 했을 때.... 그런 소소하지만 기쁜 소식을 우리가 계속 함께였더라면 그 누구보다 축하해 주었을 나에게 전하고는 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신입사원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은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바빴다. 가장 바쁜 현업부서에 배치받았기 때문에 인턴으로 간 첫날을 빼고는 계속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했다. 밤 12시가 넘어 새벽에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주말에는 '신입사원 합창단' 연습을 가거나 등산을 따라가야 했다.

 집에서는 잠만 겨우 잤다.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 얼굴조차 보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900점 넘은 토익성적표 사진이 눈에 들어오기나 했을까.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우습게도 이별을 제대로 체감할 시간도 없이 시간에 밀려 내 바쁨에 치여 그를 잊어갔다.


 또 하나의 이유라면... 신입사원인 나는 인기가 많았다. (내 자랑 맞다.) 노총각 대리, 과장님들부터 그룹연수동기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고백을 받았다. 비싸서 자주 가지도 못하던 참치집에서 밥을 사주고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표를 턱턱 예매해 오는 남자들에게 점점 익숙해져 갔다. J와 먹던 닭갈비 볶음밥도 학교 앞 짜장떡볶이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J의 이야기를 가장 첫 번째로 적어야 했던 이유는 하나다.


그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어떤 조건도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 하나만을 원하던 사랑.

그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나던 눈물, 사랑한다는 한 마디에 살이 떨려오던 느낌.


그와 함께 할 때 많은 것들이 처음이었고 그 처음의 경험들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 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리고 서툴러서 감정의 표현이 너무 거칠기도 했고 서로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 시절 우리는 확실히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그 어떤 남자가 매일 술을 마시고 취해 친구들과 밤거리를 어울려 다니다가 데리러 오라는 여자를 그토록 오래 보살필 수 있을까.

 그 어떤 여자가 자기를 두 번이나 속이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하던 남자를 눈감아주고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 20대 초반의 J와 내가 그랬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일까. 당시에는 미움도 분노도 원망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고마움만이 남아있다.


 너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고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맙다. (이래서 추억은 미화된다고.. 하나보다.)






 2021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전에 아주 가끔씩 안부를 묻거나 근황을 전하는 통화를 한 적은 있지만 만난 적은 없었다.


 만남은.. 아주 우연하고도 충동적이었다.


 친동생의 결혼식으로 잠시 한국에 들어갔던 어느 날. 예전 그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앞에서 약속이 생겼다. 정말 학교 끝나고 매일같이 갔던 그의 집과 집 앞 놀이터를 보니 저절로 그의 생각이 났다. 마침 친구가 늦는다고 했다. 그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충동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받진 않았다.


'역시 무리였나 보군.'


 아쉬운 한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원래 약속했던 친구들과 만나 한참을 놀고 있는데 그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이미 그 동네에서 이사 간 지 오래였지만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데리러 오라고 했다.)

 장난 반 진담 반이었는데 마치 어제까지도 우리가 연락하고 지냈다는 듯이 자연스레 그가 왔다. 내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차를 태워 나를 바래다주었다.


 11년 만이었다.

분명 11년 만이었는데 그는 정말 그대로였다. 얼굴도 목소리도 말투도 만나자마자 나한테 툴툴대는 모습도 다 그대로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만날 때의 이야기와 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 오랜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서로 오해했던 부분에 대해 해명하기도 하고 이제 와서 화를 내기도 했다. 마치 어제 싸웠다는 듯이 감정이 널뛰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이런 감정들은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분명 달라진 점도 있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던 그는 이제 자신의 차로 나를 바래다주었고 드라이브도 시켜주었다. 비싸서 갈 생각도 못하던 한정식 집에서 밥을 사주고 자기가 아는 맛집으로 나를 리드하기도 했다. 조금은 어른이 되어있는 것 같은 그였다.


 그는 나를 떠나보내고 많이 후회했었다고 했다. 나의 소중함을 몰랐었던 것 같다고. 나만큼 자기한테 잘해준 사람은 없었던 것 같고 많은 세상을 보여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두 번의 바람 아닌 바람은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여전히 내 뜻대로 외국에 가서 자유롭게 살고 글도 쓰는 내가 멋지다고 했다. 그는 내 책도 사고 내 글도 모두 읽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둘 다 결혼 안 했으니까 계약결혼해서 유튜브 하는 건 어때? 바람 두 번 핀 전 남자 친구와 11년 만에 다시 만나 결혼한 썰만 풀어도 대박일걸."


여전히 헛소리를 하는 변하지 않은 모습이... 솔직히 반가웠다. 여전하구나. 하하하


  물론 그도 우스갯소리로 하는 소리였겠지만 내가 피렌체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한동안 우리는 쭉 연락을 주고받았다. 매일 그가 퇴근한 후 페이스톡을 하고 하루 일상과 힘들었던 일들을 공유했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반가움이었고 외로움을 나누는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이탈리아에 온다고 하고 비행기표를 끊었을 때는 잠시나마 괜한 기대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그는 결국 오지 않았다. 계획을 잡은 날짜에 앞서 갑자기 한국 내 코로나 감염자수가 급증하였고 교육사업 쪽에 종사하는 그는 어린 학생들과 상대할 일이 많았기에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탈리아에 온다는 건 정말 개념 없고 어쩌면 범죄자 취급까지 받을 수 있을 행위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회적 인식이 그랬다.)


 사뭇 다른 유럽의 환경에 살고 있던 나는 그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실망감과 화를 감출 수 없었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덴데. 여기 온다고 코로나 다 걸리면 유럽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겠네?"


 다소 격양된 반응을 하며 모든 일정을 취소하며 사과하는 그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 뒤로 자연스레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왔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 무언가 다른 관계가 되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냥 즐겁게 여행을 하고 끝이었을지도 모르고 여행 중에 내가 그에게 다시 반해 따라다녔을지도 모르지....


 여전히 귀엽고 해맑고 참 착하고 말 한마디로 나를 화나게도 했다가 웃기기도 했다가 설레게도 하는 J였지만 다시 그를 사랑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메말라있었다. 많은 시간과 경험들을 통해 성숙해지고 강해지기도 했지만 반면 사랑이나 남을 좋아하는 감정에 있어서는 인색해지고 메말라버린 나였다. 순수한 마음 하나로 누군가의 곁에 있기에는 지켜야 할 내 것이 너무 많았다.


어쨌든 그가 오지 않았고 나도 한국에 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가끔 통화로 안부를 묻고 서로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그 정도의 훈훈한 전 남자 친구, 전여자 친구의 관계로 우리의 인연은 끝내 마무리되었다.  


 아쉬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의 연인으로서는 아니지만 아직도 그는 가장 강력한 내 편 중에 하나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그의 허락을 받을 때도, 이 글을 연재하는 내내도 제일 큰 관심을 가지고 기억나지 않는 에피소드나 감정들까지 되새겨주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자기가 너무 나쁘게 묘사되거나 했을 때 득달같이 따지는 카톡을 보낸다거나 갑자기 자기가 너무 나쁜 놈이었던 것 같다며 사과를 한다거나 해서 부담을 주어 내가 글 쓰는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이런 존재가 내 삶에 있었고 아직도 있다는 게 참 감사하면서도 어느 날은 전 남자 친구랑 아직도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내가 비정상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뭐.. 어쩔쏘냐.


 J가 있었기에 한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고 지금도 때때로 그로 인해 행복하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제든지 그가 필요하다면 도울 마음도 그리고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도 가득하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가정이 생기거나 하기 전까지는. 쿨하게. 뭐. 잘 지내보자! 고 메시지를 남기며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안녕 J.  

내가 처음으로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아!




비하인드.

한정식을 사준다고 갔을 때 막걸리를 한 병 시키겠다고 하자 정색을 하며 뭐라고 하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내가 술 마시는 모습만 봐도 PTSD 온단다... '용케도 그때는 잘 참았네.' 하면서 무시하고 결국 한 병을 시켜 먹는 나도 한숨 쉬며 따라주던 너도.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 하하하.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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