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지난한 연애와 이별을 겪고 나서야,
스물아홉의 초가을, 2년 만난 남자친구랑 헤어졌을 때였다. 늘 그렇듯 마지막이길 바랬고 마지막인 줄 알았던 연애는 별 다를 거 없이 끝이 났다.
스스로가 우선순위에 서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꼭 그렇게 매 순간에 자음 'ㅁ' 하나를 더 붙여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았다.
인간관계에서 한 번도 내가 우선순위였던 적이 없었던 나는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었기에 상대가 좋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뻐하는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나의 기쁨이라 여겼다.
몇 개의 지난한 연애와 이별을 겪은 뒤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내 연애의 결말은 언제나 결혼이었다는 점.
20대의 나는 지극히 결혼주의인 사람이었다. 사랑의 끓는점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상대가 마음을 표현하면 자연스레 마음이 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말이 당연히 결혼인 줄 알았던 어설픈 나의 생각이 나를 더 옭아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의 지난한 연애는 보통 지치기가 지칠 때쯤 끝이 났다. 나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도 기쁨의 작은 조각을 찾아다가 그 이름을 기쁨이라 지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왜 자꾸만 오류값이 나는지 깨달을 때쯤 이별을 했다. 나를 놓치고서 지켜야 했던 게 겨우 사랑인 것을. 근데 그게 과연 사랑은 맞았을까? 이 사실을 난 서른을 네 달 남짓 남기고 알았다. 그리고 1년 반쯤 흘렀다. 스스로를 옥죄는 관계를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아주 행복해질 가능성에 놓인다. 20대의 마지막은 여태껏 내가 보내온 시간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비로소 나 자신이 되었을 때, 사랑이 예쁘게 영글었다. 너무 예쁘게 영글어서 함부로 먹기 아까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