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臨愛心 - 2
# 2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스탠드 조명으로 부족해, 방 안에 불도 켜두었다.
식은땀이 계속 흘렀고, 타는 듯한 갈증에
물 한 통을 다 비운 거 같다.
아침 해가 밝자 아버지의 출근 준비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도망치듯 거실로 나와 물었다.
“아빠. 아빠가 밤에 내 방 불 껐어?”
“응. 너 자고 있길래 아빠가 껐어. 왜?”
아빠가 끈 거구나.
아침 햇살이 거실에 쪼개어 들어온다.
햇살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밤새 공포에 떨었던 나의 기분이 무색하게
너무나 평범한 아침이다.
“너도 씻고, 준비해야지.”
기분이 묘했다. 꿈에서 깬 듯한 기분.
그리고 밀려드는 피곤함.
나는 그 날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점심도, 저녁도. 왠지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술이 고팠다.
+
학교에서 대강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실없는 농담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 녀석과 술을 마셨다.
강남 토박이 ‘승현’이라는 친구.
약간 살집이 있는 체구에,
익살스러운 녀석이지만 정이 깊다.
나는 동대문에서 본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름이 애심? 진짜냐?
아니 무슨 우리 엄마 세대 이름 같다.”
“사랑, 마음. 이라는 뜻.
뭔가 더 특별한 거 같아.”
“근데 너가 이러는 거 보니,
진짜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 봐?”
“첫눈에 반했어. 그냥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번지 점프를 하다 그 주인공 여자 닮았다고?”
“아니 이은주 보다 더 예뻐. 뭔가 신비로워.”
“이 새끼, 진짜 제대로 빠졌네.
이번 주 일요일 날 본다고 했지?”
“응, 3일 뒤다. 언제 기다리냐?”
“오늘 술 다 퍼먹고3일 기절했다 깨라. 마셔!”
평소 천박한 말투.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승현이지만,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질 낮은 장난을 걸지 않았다.
그런 승현이 고마워서 그랬나, 아니면 술 기운이었을까.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했다.
“승현아. 어제 이상한 일 있었다?”
“뭐?”
“아니, 어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어.”
“가위? 그거 첨 눌려 보냐?”
“응. 난 처음이야.
근데 헛것도 보고,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잤다.”
“뭔데? 자세히 이야기 해봐바.”
나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승현은 혼자 자작을 하며,
사뭇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불은 아버지가 꺼 주신 거고,
그럼 옷은 누가 그런 건데?”
“나도 물어봤는데,
옷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더라.”
“너 무슨 몽유병 같은 거 있는 거 아니냐?”
“아니, 그런 이야기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럼 진짜 귀신 같은 건가?”
“몰라 나도. 그러니까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잤지.
지금도 피곤해 죽겠다.”
“야, 어차피 너 내일 오전 수업이잖아.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언제 집까지 갔다가 갈래?”
사실 남의 집에서 잠을 자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내 성격인지라 승현의 제안에 약간 고민을 했다.
“내가 입고 잘 옷은 있냐?”
“내 옷 입어 그냥.”
하지만 어제의 그 공포스러운 경험 탓에
차라리 친구와 함께 잠을 청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
낡은 외관의 아파트와 다르게 고급스러운 실내.
승현의 집은 보기보다 화려했다.
평범한 가정집을 예상했던 나의 상상과 다르게,
고풍스러운 가구와 넓은 승현의 방.
그리고 킹사이즈 침대가 나의 불편함을 조금 달래주었다.
“바닥에서 자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침대에서 같이 자도 되겠다.”
“야, 가운데 베개 놓을 테니까 선 넘지 말고 자라.”
사회적 친구에 가깝다고 느껴졌던 대학 친구지만,
그날 나는 친구의 정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편해지니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서로 실없는 농담을 하며, 어느 순간 대화가 끊겼다.
그렇게 우리는 잠을 청했다.
+
-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 헤어지면 또 만나요 뽀뽀뽀.
익숙한 멜로디에 잠에서 깼다.
노래 소리의 주인공은 승현이었다.
갑자기 자다 말고 왠 노래를 부르지?
나는 고개를 돌려 녀석을 보려 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 누워있는 탓에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잠꼬대인가?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굳이 잠든 친구에게 장난치려고
일부러 동요를 부르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승현이의 목소리가 맞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승현은 반복해서 노래를 불렀다.
뽀뽀뽀 친구 구절에서는 목이 찢어져라 불렀다.
분명 안방에는 친구 어머니가 계실 텐데,
빨리 어머니가 들어와 방 불을 켜주었으면 했다.
노래는 계속됐다.
그리고 승현은 소리를 점점 더 키워갔다.
집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수준의 소리였다.
단조로운 가사. 명랑하고 밝은 동요가
한순간 끔찍하고 무서운 노래가 되었다.
갑자기 침대에 진동이 느껴졌다.
무슨 진동? 나는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다.
고개는 여전히 돌아가지 않는 상태다.
팔과 다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침대의 진동은 느낄 수 있었다.
진동이 점점 커진다.
나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수 있게
사력을 다해 힘을 주었다.
얼핏 보인다.
침대 위에서 꼿꼿하게 누운 자세로
양손의 주먹을 말아쥔 채
침대를 때려대는 승현이.
그 힘에 승현의 몸이 들썩들썩 댄다.
머리 맡에 있던 승현의 핸드폰이 침대 밑으로 떨어진다.
녀석은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
어떻게든 이 가위를 풀고 일어나고 싶었다.
방 불을 켜고 승현을 깨우고 싶었다.
온 몸에 힘을 주었지만 아무 감각이 없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그때였다.
- 친구 노래 잘하네?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
목을 긁어대는 쇳소리.
희미한 형체는
친구의 발목을 쥐어 잡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씨익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이었다.
나는 고풍스러운 침대에 홀로 잠들어 있었다.
내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승현은 침대에 없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니 승현이 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나 태연한 모습.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집 안에 풍기는 북엇국 냄새.
어머님은 이리 와 앉아 밥을 먹으라 했다.
짧게 인사를 하고 승현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야 무슨 잠을 그렇게 깊게 자냐.”
“…”
“언제 일어났냐?”
“나? 방금?”
“어제 새벽에 무슨 일… 없었냐?”
“무슨 일? 둘 다 개 뻗어서 잤잖아.”
꿈이었나?
너무나 선명한 기억. 그리고 그 감각.
그리고 소름 끼치는 뽀뽀뽀 노래.
“야, 괜찮냐? 어제 뭐 가위라도 눌렸어?”
“아니다.”
+
등교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나갈 채비를 했다.
거실 선반 위에 쌓여 있는 돈다발에서 승현은
만 원짜리 몇 장을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우리 집과 다른 풍경과 정신없는 등교 준비에
또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간밤의 사건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야 학교 버스 늦겠다. 빨리 나가자!”
“뛰면 시간 맞출 수 있을 거 같은데?”
먼저 현관을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친구 어머님은 학교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안으로 타던 때,
“아 맞다, 내 핸드폰! 엄마 방에서 핸드폰 좀 갔다줘.”
어머님은 현관 말발굽으로 문을 고정해 둔 채
승현의 방으로 들어가 물었다.
“핸드폰 어디 뒀니?”
“침대나, 책상 위에 찾아봐!”
“안 보이는데? 거실에 둔 거 아니야?”
그 순간,
내 척추를 타고 찌릿한 전류가 흐르듯
소름이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갔다.
다리와 손끝이 저릿한 느낌이 들고,
몸이 벌벌 떨렸다.
“…어머님… 침대 오른쪽 바닥이요…”
아니길.
제발 아니길.
제발.
거실에 있길.
식탁 위에 있길.
아니어라.
“침대 밑에 있었네. 자, 여기. 빨리 가 늦겠다.”
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