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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Jul 30. 2023

숲해설가를 꿈꾸는 시골 촌년

평범한 회사원이 숲해설가가 되는 이야기의 시작점


나는 농부의 딸이다. 내가 농부의 딸인 게 좋다.

'시골 촌년'이라는 말도 좋다. 조금 거칠지만 시골스러운 냄새를 투박하게 풍기는 이 말들이 좋다.


시골 아이인 나는 아빠를 따라 쭐레쭐레 산을 다니면서 봄, 여름이면 아까시 꽃을 송이째 따서 도시락처럼 들고 다니며 꿀을 빨아먹었다. 풋내 나는 찔레나무순과 새큼한 싱아 잎을 간식 삼아 먹으며 산 구석구석을 놀이터처럼 누비고 다녔다. 가을이면 시골길을 뛰어다니며 하늘을 가득 뒤덮은 잠자리들을 잡고 놀았다. 잠자리가 어찌나 많았는지 허공에 대고 아무렇게나 채를 휘둘러도 ‘후드득’하면서 한두 마리씩은 어설픈 사냥꾼한테 잡혀 들어왔다. 겨울에는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서는 풀무를 돌려 화르르 떠오르는 불씨들을 구경하다 이내 뛰어나가 입김을 불며 놀곤 했다.


아빠가 논에서 잡초를 뽑으실 때면 그 옆에 난 샛길에 앉아 땅을 파거나 개미를 구경하며 놀았다. 그러다 아빠가 거머리를 한 마리씩 던져주면, 땅을 파고 물을 채워 거머리 집을 만들어주었다. 아빠는 논에서 피를 뽑고, 거머리는 아빠 다리에 붙어서 피를 빨았다.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은 한갓지고 아득한 날들이었다. 한참을 거머리와 놀다 보면 "식사하세요오오" 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땅을 박차고 달려가 꿀맛 같은 밥을 먹은 다음 논두렁으로 돌아와 보면 거머리들은 뜨거운 오후 햇빛에 말라죽어있곤 했다.






정다운 삶터이자 놀이터였던 시골 너머엔 '사회'라는 어른들의 세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도 '사회인'이 되어 그곳에 던져졌다. 희한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의 놀이터이자 친구인 숲과 나무를 그저 개발의 대상과 수단으로 여겼다. 왜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개발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에 빈터가 있으면 여기저기서 날아온 풀씨들이 싹을 틔워 그 공간을 푸르게 채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까운 땅', '노는 땅'이라며 건물을 지어 올릴 생각만 했다. 사회라는 곳에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이 지천이었다. 남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사람이 박수를 받았다. 뭐든 필요한 만큼만 갖고 싶고 경쟁보다는 공존을 바라는 나는, 자꾸만 이 사회와 결이 어긋남을 느꼈다.


지금보다 더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살짝 발을 돌려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사방이 트인 언덕의 꼭대기에 서서 나를 꼭짓점으로 한 호(弧)를 그렸을 때, 그 호를 통해 펼쳐지는 풍경이 달라진 느낌. 좁은 호가 보여주는 풍경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는데, 조금만 방향을 틀고 조금만 호를 넓히면 되는 거였다. 그곳에는 또 다른 길이 있었고, 그 길은 나무와 풀과 온갖 생명이 있는 숲길이었다. 돌고 돌아 나의 시골을 다시 마주했다.


이 길에 선 나는 자본주의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를 종용하는 일보다는 생산적인 일, 세상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내 경험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숲해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숲해설가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2019년 나를 감싼 많은 것들이 이제는 새로운 선택을 할 때라고,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삶을 한번 살아보자고 손을 잡고 이끄는 듯했다. 빌딩숲에서 나와 '진짜' 숲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인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렴풋하지만 분명하게 '지금까지와는 다르겠구나' 하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희붐했던 동이 결국 햇살이 되어 누리를 밝히듯 그 희미한 느낌 속에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습이 왠지 제법 괜찮을 것 같다는, 햇살 같은 설렘이 함께 있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거칠게 보자면 그저 직업 하나 바뀐 것뿐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 길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 식성, 라이프스타일,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시나브로 흔들어 성글게 만들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도, 헌 것이 나가기도 하고, 몰랐던 것이 그 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작은 조각들이 군데군데 바뀌면서 나라는 퍼즐은 조금 달라졌다.


달라진 퍼즐이 썩 마음에 든다. 퍼즐은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내가 바라는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이제 사회의 결에 나를 맞추지 않고 삶의 결을 스스로 다듬어 가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 고유의 결을 가지며 그 결은 모두 다르다고 믿는다. 나는 어떤 과정을 지나오면서 나의 결을 찾았고, 어떻게 그 결을 가다듬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한 사람으로서 또 숲해설가로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그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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