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에 아버지와 함께 고석정 꽃밭에 다녀왔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꽃들이 장관이었다. 아버지는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앉을 곳을 발견하고, 너희들이나 갖다오라고 당신은 그곳에 앉아서 꽃구경을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꽃밭을 돌며 사진을 찍고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요?”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길게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용건이 끝나면 아버지 쪽에서 바로 끊었다. 아버지 집으로 가도 마주 앉으면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얼마 전 포천에 갔을 때, 차 안에서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군 복무했던 곳을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차 안에는 남편과 나 그리고 동생이 있었다. 우리는 재밌고 신기해하며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어스름한 창밖을 내다보며 아버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길 양옆으로 노랗게 벼가 익어가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이야기는 낚싯바늘처럼 다른 이야기를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또 다른 이야기를 자꾸 건져 올렸다. 아버지는 편안하고 느린 말투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빨라지기도 했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한 우주가 사라지는 거라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엄마가 옛날 자신이 지나왔던 날을 이야기하면, “그거 전에 했던 거잖아. ……그래서 이렇게 됐다며. 어휴, 엄마 그거 몇 번째 얘기하는 건 줄 알아?” 하고 입을 막았다. 듣기 싫었다. 한두 번 들은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엄마가 그렇게 일찍 가실 줄도 모르고. 지금, 엄마의 모습은 기억하지만 목소리는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의 우주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아버지, 자꾸 생각해 뒀다가 다음에 만나면 또 이야기해 주세요.”
아버지가 집 앞에서 내려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