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에는 순서가 있다
질서와도 같은 그 순번은
의식과도 같아서
알고리즘에 따르지 않는 번호를
솎아내는 일은 침범이라기보단
권한에 가까웠다
단순한 에러라 치부하기에
해석할 수 없는 기호가 갑자기
끼어들어 엎어진
순서 앞에서 흐르듯이
지나가지 못하고 고여있는
그런 식으로도 어그러질 수 있는 날
그럴 수 있지 못해서
그럴 수 있으면 안 돼서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성대를 찢고 나오는 순서의 모서리를 할퀴어대면
거꾸로 집어 든 단면에 얼룩덜룩 묻은
시퍼런 핏방울을 꿀꺽 삼키며
차라리 바라는 것은
칼로도 잘라낼 수 없는
고유한 순서를 약속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