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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의 나무 Feb 19. 2024

Ep.8 내가 간과한 것,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것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

안녕하세요. 오늘도 제 슬픔의 기록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은 글을 왜 쓰시나요? 꼭 글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기록을 남길 때 비로소 우리 내면이 말해주는 진실과 교훈에 집중하게 됩니다. 당연히 안다고 믿었지만 실은 놓치고 있는 것들, 미래의 내 자신이 나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들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뼈저린 인생의 실마리들도요. 독자님은 오늘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나는 내 인생에서 부재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들을
언젠가 잃을 것을 이제 확실히 안다. 내 결핍은 더 커질 거다.”
-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김소민) 중 -


잠시 숨을 참았다. 누구 하나 미동하지 않았던 그 찰나를 나는 기억한다. 마주 앉은 우리는 대화를 멈추고 말을 골랐다. 지금, 툭 치면 둘 다 후두둑- 눈물을 떨어뜨릴 만큼 심장이 부풀어 올랐거든.


그날 대화의 주제. 상상하지 못한 우리 곁 소중한 존재의 부재. “하루만 더 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어떻게 내가 도달한 생각과 똑같냐”고, “나도 하루만 더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고인들께서 살아계실 때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것들, 이제야 알게 된 교훈을 하나씩 꺼내놨다. 아버지를 향한 그의 미움 이면엔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세상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찾던 우리는 상실 앞에 겸허해졌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가진 높은 기대와 그걸 채워주지 못해 생긴 실망이 할머니의 죽음 앞에 눈 녹듯 녹아내렸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할머니께서 다시금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



10여 년 전쯤 본 한 광고가 떠오른다. 제목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가.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플롯은 이렇다. 내가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간다면, 그리고 가서 이틀쯤 머문다면, 얼굴을 마주 보고 두런두런 대화하는 시간은 아주 넉넉히 10시간쯤. 그렇게 1년이면 100시간, 부모님께서 앞으로 10년쯤 건강하게 사신다고 계산하면 1,000시간쯤 되겠다. 이걸 하루 24시간으로 나눠 환산하면 41.666666일. 그러니까 고작 한 달 열흘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어느 순간 신께서 부모님을 다시 데려가시면 더는 누리지 못할 이 시간을 나는 지금 얼마나 알차게 쓰고 있나. 못마땅한 면만 찾아내고 어릴 적 상처를 운운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때 잘해드릴 걸’하고 땅을 칠만한 일들이나 하는 게 스스로를 위해서도 낫지 않겠나.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의 저자는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쓴 미국의 편집자이자 기자인 스콧 스토셀의 불안증과 열네 살 소녀가 상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 <벌새>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었다. “때로 삶 전체가 상실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같다.”


저자는 또 ‘왜 쓰는가’ 묻는 장에서 “순간을 잡으려고 쓴다”고 적었다. 이 소제목의 에피소드는 코로나19 시절 스스로 밥을 지어 드실 만큼 건강하시던 아흔다섯 살 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뒤 20분으로 제한된 면회시간이 아쉬워 그 시간을 잊지 않으려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적은 글이다. (제목만 보고 집어오는 바람에 오해했는데, 책 전체가 슬픔을 기록한 내용은 아니다.)


왜 쓰는가. 그러니까 글을 쓰는 동기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은 풀리지 않는 분노를 토해내기 위해 쓰고, 또 다른 이들은 나처럼 슬퍼서 쓴다. 그 순간을 잊지 않으려 쓴다. 기억은 언젠가 흐려질 테지만 아직 생생할 때 남겨둔 기록은 그 기억을 머릿속 앨범에 저장해 준다. 언제든 글을 꺼내 볼 때마다 기억은 다시 선명해지고 잡고 싶었던 그 순간으로 잠시나마 돌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지난해 할머니의 쇠약해짐을 감지하고 매주 토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할머니와 데이트했다.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를 녹음해 두고 영상으로도 담았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순간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함께 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게 사랑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눈빛은, 입모양은, 목소리는, 숨소리는, 냄새는, 삶에 대한 애착은, 언제나 곱게 단장하시던 고상함은, “오야” 하고 눈을 감았다 뜨시는 미소는, 그 인자함은, 작은 것 하나 부탁할 때에도 미안해하시며 내 눈치를 살피시던 염치와 귀여움은, 그러다 신앙 앞에선 대쪽 같은 강인함은, 끝없이 넘치는 사랑의 표현은, 그 말들을 증명하는 사랑의 수고는 어떠했는지 하나라도, 한 순간도 잊고 싶지 않다. 오롯이 기억하고 싶다.



내가 간과한 것들, 그리고 뒤늦게 배우고 있는 것들



“사실 우리가 간과했을 뿐 객관적인 실마리는 있었어.

그는 말했다. 아버지의 폐기능이 전과 다르게 약해졌음을 자신은 모르지 않았노라고, 하지만 어쩌면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무너져 내릴 것을 알기에 그것을 유예하고 싶었을지 모른다고, 자기 객관화에 능한 그가 덤덤히 말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지난해 3월 쓰러지신 뒤로도 양념갈비 2인분은 너끈히 드시던 게 불과 여름의 일인데 어찌된 일인지 할머니께서는 가을부터 외출을 못 하겠다며 요양원에서 밥을 먹자고 하셨다. 어렵게 모시고 나가 고기를 사 드려도 두어 점 드시고는 젓가락을 내려 놓으셨다. 집에 돌아와 통화 녹음을 들어보니 이전 해까지는 또렷하셨던 목소리가 작년 들어 부쩍 어눌해지셨다. 9월에는 “이제 나는 고만 가야지. 우리 공주 너무 힘들게 하면 안 되지” 하시는 말씀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놓치고 있었을 뿐 곳곳에는 친절한 복선이 깔려 있었다.


다시 그가 물었다. 장례 이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냐고. 나는 답했다. 함께 울어줄 때 내 눈물이 멈추더라고. 그리고 내가 힘들까 봐 입관 때 메시지를 보내주고 청심환을 챙겨주며 나를 걱정해 준 이들에게 마음 깊이 고마워하게 된다고. 그 몇 장면이 또렷하다고.


상실을 겪고 보니 세상이 담백하게 바라봐진다.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들이 가지런히 정렬된다.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내비게이션을 다시 맞춘다. 그리고 머리에 새긴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소중한 이들의 존재가 언제까지나 허락되지는 않을 것임을, 서른 해 넘게 내 곁을 지켜주신 축복이자 내 인생의 선물, 할머니께서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듯, 내 부모님도, 친구들도, 스승과 동료도, 영원히 내게 주어진 선물이 아님을 깨닫는다. 부재를 상상하고, 더 소중하게 대하려 애쓴다. 그리고 언젠가 신께서 부르시면 내려놓아야 할 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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