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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찬 Aug 30. 2024

찾았다! 나의 롤모델!

Part 3. 강아지와 함께한 여행

얼마 전 다녀온 양양의 한 서핑샵에서 앙금이란 이름의 귀여운 강아지를 만났다. 앙금이는 잘 웃고 처음 보는 내게 손을 건네줄 만큼 애교도 많은 강아지였다. 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챈 사장님은 내게 한 통의 간식을 건네주며 앙금이와 놀아달라고 했다. 나는 어느새 숙련된 반려인 모드로 전환해서, 다솜이에게 했던 것처럼 ‘앉아!’ ‘손!’ ‘코!’ 등 각종 개인기를 시킨 후에야 '옳지~!' 하며 겨우 간식 한 알을 주었다.


그러다 다솜이와 그랬던 것처럼, 등 뒤로 손을 숨겨 한쪽 손에만 간식을 쥔 채 앙금이 앞에 내보이며 간식을 찾아보라고 했다. ‘어느 손에 있게?’ 놀이를 처음 해봐서 그런 것일까? 내 예상과 달리 앙금이는 한 번도 간식이 든 손을 맞추지 못하고 애먼 손에 코를 들이밀었다. 다솜이는 별다른 연습 없이도 매번 100점을 맞던 놀이인데!? 나는 잠시 의아해했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어 ‘역시 우리 다솜이가 특별히 똑똑한 거였군!’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앙금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다솜이가 ‘어느 손에 있게?’ 놀이에서 늘 100점 맞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강아지의 후각은 인간에 비해 1만~10만 배쯤은 뛰어나다고 하니, 다솜이도 뛰어난 후각 정보를 통해 어느 손에 간식이 있는지 쉽게 알아맞힌 것일 게다. 앙금이와의 일을 생각해 보면, 다솜이의 후각은 강아지들 중에서도 뛰어난 편이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솜이의 뛰어난 후각은 ‘어느 손에 있게?’ 놀이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솜이는 더 많은 정보를 후각을 통해 알아내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신기한 것은 바로 '우리 가족'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집집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는 하지만, 같이 살지 않는 가족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날까? 엄마가 처음 서울집에 온 날, 다솜이가 단번에 알아보고 자기소개를 했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에피소드는 아빠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3kg도 안 되는 강아지를 위해 성인요금의 KTX 티켓을 끊고 시속 300km로 달려간 곳은 부모님이 살고 계신 전주다. 인터넷 설치기사 아저씨, 에어컨 수리기사 아저씨 등 성인 남자만 보면 늘 달려들고 짖던 다솜이라, 혹시 처음 아빠를 보고 경계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집에 들어섰다.


먼저 다솜이는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집안 곳곳에서,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엄마의 체취가 느껴졌을 수도, 아니면 내가 학창 시절에 쓰던 오래된 물건에서 어렴풋이 나의 흔적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에게 다다른 순간! 다솜이는 아빠의 다리 언저리에서 오랫동안 냄새를 맡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총총 뒤돌아 소파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도 다솜이에게 별다른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서로에게 무심해 보이는 아빠와 다솜이를 보며, 내심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언가 더 격한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다솜이는 '이 사람이 아빠구나'라는 것을 금방 인지한 듯했고, 아빠는 '무슨 강아지를 키운다고 그래!' 하며 썩 내키지 않아 하는 듯했다. 나는 아빠가 다솜이를 싫어하는 것인지 슬쩍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부스럭 대는 소리에 거실로 나와보니, 아빠가 웬 빈 상자에 원을 그리고 칼로 오려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다솜이 밥그릇이 시원찮아서..."


아빠는 다솜이의 식탁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늦잠을 자는 사이 엄마가 다솜이의 아침밥을 챙겨주었는데, 여행용 밥그릇으로 가지고 온 햇반용기가 다솜이의 혀놀림에 자꾸 뒤로 밀려났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다솜이가 밥을 먹기 불편해 보인다고 맥가이버처럼 칼을 꺼내 든 것이다. 그리고 용케 자기 것인 줄 알아차린 다솜이가 칼질(?)하는 아빠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다솜이 전용 식탁에 차린 밥그릇


그때부터였을까? 다솜이는 유독 아빠를 따랐다.

나름 수컷 강아지여서 그런지, 다솜이 눈에는 이것저것 척척 해내는 아빠가 가장 멋있게 보였나 보다.


다솜이를 매혹시킨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빠는 내가 잘 주지 않는 간식도 다솜이에게 척척 내어주고, 심지어 호두과자의 빵과 팥앙금 부분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내가 눈짓을 주면 몰래 하나 더 챙겨주고는 '누나가 더 이상은 안된대!'하고 내 핑계를 댔다.


간식을 많이 주는 것은 서울에서 형아(누나의 남자친구)도 늘 하는 일이지만, 아빠와의 한 끗 차이는 바로 과격함이다. 다솜이를 솜털인형 다루듯 이리저리 휘휘 데리고 노는 형아와 달리, 아빠의 놀아주는 손길은 아주 거칠지는 않았다. 이 점도 다솜이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서울 집의 소파 왼쪽 자리가 다솜이의 지정석인 것처럼, 전주 집의 소파 왼쪽 자리는 아빠의 지정석이다. 늘 같은 자리에 앉거나 누워서 TV를 보기 때문이다. 다솜이 눈에는 이런 모습마저 제법 '강아지스럽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즉, 멋있어 보였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외출했을 때에는 작은 흔적이라도 찾듯, 소파 왼쪽 자리에서 아빠가 베던 베개에 코를 박고 누워있기 일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솜이에게서 어디선가 아빠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다솜이 안 잔다! (잔다)


서울에서는 나만 따라다니며 늘 내 눈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아빠 옆에 착 달라붙어있는 다솜이를 보고 있자면 괜히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치 아빠를 롤모델로 삼기라도 한 듯한 다솜이를 보며 내심 뿌듯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솜이가 아빠를 좋아하고 따르는 만큼, 아빠도 다솜이를 예뻐하고 아꼈기 때문이다. 강아지 키우기를 반대하는 모든 아빠들이 결국엔 강아지에 죽고 못 산다는 온라인상의 이야기가 남의 집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늘 루틴을 중요시하고 동네 순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다솜이가, 얌전히 시속 300km의 KTX기차를 타고 먼 여행길을 즐겁게 떠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솜이의 롤모델, 아빠 때문 아니었을까?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다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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