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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Oct 17. 2018

왜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할까?

스페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11 문화 차이? 성향 차이? 

스페인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여행을 하면서 길을 물어보면 백이며 백 길을 잘 가르쳐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을 이용해서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길을 잘 몰라도 아는 것처럼 가르쳐 주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이런 식의 행동들이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100%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 맞니?


내겐 학생비자를 취업비자로 변경할 때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학생비자 연장은 여러 번 했었지만 취업비자로의 변경은 처음인지라 나름 꼼꼼하게 조사를 했다. 이민청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필요 서류를 확인하고, 이미 변경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험도 찾아보고 준비를 했다. 다행히 당시 팀장과 인사팀에서도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인사팀 담당은 한국인에게는 요청되지 않는 범죄 경력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준비하라고 했다. 그 당시 이민청 홈페이지에는 그런 문구가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에서도 그런 말은 없었다. 하지만 담당은 내게 정말 자신 있게 꼭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민청 홈페이지를 캡처까지 해서 보냈지만 그녀는 완고했다. 자신이 확인했고,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 경력 증명서라는 것이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받기 위해서는 대사관에 가서 신청하고, 아포스티유를 받은 서류가 한국에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여기서 받으면 다시 스페인에서 공증을 해야 한다. 이 절차만 3주 이상이 걸리고 또한 돈도 약 200유로 이상이 드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몇 번을 다시 확인했지만 나중에는 짜증 섞인 어투로 자신이 아는 것이 맞다고 했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확신하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진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나는 돈과 시간을 들여서 서류를 준비했다. 


그럼 결과는 어땠을까?


이민청에 서류를 접수하러 갔을 때, 범죄 경력 증명서를 내밀자 서류를 접수받는 직원이 말했다. 


"넌 한국인이잖아. 이건 필요하지 않아. 이 서류는 남미나 중국인들에게만 필요한 거야"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내가 그렇게 아니라고 증거까지 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다고 우긴 그 직원은 뭔지, 본인의 일인데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다니, 게다가 정말 확인해 본 것은 맞을까? 왜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한 것일까?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회사로 돌아와서 범죄 경력 증명서는 필요하지 않았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왜 다른 직원의 말을 반복하며 아는 척 하니?


브레인스토밍, 혹은 회의를 하다 보면 가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분명 좀 전에 다른 사람이 한 말인데 교묘하게 바꿔서 꼭 자신의 지식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한두 번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데 그게 여러 번 반복이 되면 묘한 기시감이 들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A: 아시아 언어는 유럽의 언어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B: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X방법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블라블라블라

C: '제가 아는 바로는' 아시아 언어와 다른 유럽 언어는 많은 차이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Y방법으로 진행하면 어떨까요?


그냥 회의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이게 처음이 아니라면, 그리고 여러 번 겪어봤다면 이상한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여기서 C는 항상 몇 대화 앞에서 언급된 지식을 단어만 살짝 바꿔서 자기의 지식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두 언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언어에 차이가 있는지 C는 모른다. 예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C는 남의 지식을 도용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C의 순발력에 박수를 쳐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사람이 본래 알고 있었던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는 다른 누군가의 지식을 순식간에 훔치고 있는 것이 된다. 처음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그냥 넘어갔지만 계속 반복되는 '지식 절도'에 가끔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 때가 있다. 그러면 백에 구십은 답을 하지 못한다. 왜 남의 지식을 훔쳐가면서까지 아는 척을 하는 걸까?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다..




처음에는 화를 내 보기도 하고 따지고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다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은 대처 방법을 바꿨다. 누군가가 100프로 확신하고 말해도 일단은 100% 믿지 않고 꼭 서면으로 확인하고 확답을 받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는 척'이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 허점을 파고들어서 반박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무시하고 넘긴다. 그 편이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마지막으로 어쩌면 이것은 스페인의 특성이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의 성향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스페인이 이렇다고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란다. 


by.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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