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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May 25. 2021

엄마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래요

대체 카네이션을 몇 개나 만들라는 거야

 5월 8일 어버이날.


 착하고 성실한 우리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에서, 미술학원과 공부방에서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릴 카네이션을 만들었을 것이다. 의욕적인 여러 선생님들에게 떠밀려 부모님께 손편지 쓰고 꾸미기, 효도쿠폰 만들기, 손하트 또는 꽃받침 포즈로 귀여운 사진 찍기 같은 활동도 억지로 했겠지. 한두 번이 아니라 어버이날이 끼여있는 이번 주 내내 말이다.


 어린이들의 피곤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음악학원에서도 어버이날 행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 은혜>, <아빠 힘내세요> 같은 고전 동요 배우기는 물론이고 <이 세상의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기울어진 우산> 같은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창작 동요를 배우는 행사는 일 년 중 어버이날이 속한 5월 둘째 주보다 '찰떡'인 때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을 내 세상처럼 즐겁게 보냈나 싶었는데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연이어 들이닥치는 바람에 어린이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음악학원에서는 5월 8일 어버이날 특강으로 카네이션 카드 만들기와 효도 쿠폰 만들기 활동을 했다.


"대체 카네이션을 몇 개나 만들라는 거야."


어제도 학교에서  개나 만들었다고요. 몇몇 어린이들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투정조차도 나는 귀여워서 어쩔  모르겠다. 하지만  웃는 얼굴을 숨기고 서운하다는  우리 학원 카네이션 활동지를 내민다. 학교는 학교고. 이건 아주 특별한 카네이션이란 말이야. 어제 만든 거랑 아주 다를 거야. 나의 달콤한 말과 화려한 활동지의 꼬임에 넘어간 아이들은 다시 카네이션 카드 만들기를 시작한다. 빳빳한 카네이션 카드를 접고, 여러 종류의 꽃과 식물 사진을 오리고 붙여서 카드 겉봉투를 꾸민다. 흡사 마그네틱 신용카드처럼 생긴 종이 카드 뒷면에 이름을 쓰고 유효 날짜를 적어 넣기도 했다. 최대한 빨리 효도 쿠폰을 사용하시라고 유효 날짜를 '5 8  하루' 지정한 야속한 어린이도 있었다. 구름이다.


"어차피 내년 어버이날에도 새로 만들 거니까 유효기간은 내년 5월 7일까지로 하는 게 어때?"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구름이는 나의 제안을 듣고 일리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내 의견에는 반대표부터 던지고 보는 구름이가 내 의견을 참작해 주어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효도 쿠폰 안에는 빈칸이 3개 있었다. 이 빈칸 속에 내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일을 자유롭게 적는 것이다. 안마해드리기, 심부름 하기, 방청소하기 같은 고전 효도(?)로 채워 넣기 싫은 어린이들은 긴 시간 동안 빈칸을 노려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머리를 쥐어뜯는 한 어린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내가 말했다. 우리가 뭘 해드리면 부모님께서 좋아하실까?


"부모님이 하시는 일 전부를 도맡아 할 순 없지만, 도와드릴 순 있잖아? 뭐가 있을까?"

"요리 하기, 설거지 하기."

"동생이랑 놀아주기. 동생이랑 안 싸우기."


앞다투어 대답하는 아이들 사이로 누군가 외친다.


"엄마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래요."

"아, 우리 엄마도!"


나를 포함한 모든 어린이들이 책상을 치며 깔깔 웃는다.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순수한 말 때문에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웃어야 했다. 대답한 아이의 어머님이 평소 쾌활하고 온화한 인품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꼭 닮은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어머님의 유쾌한 모습이 겹쳐 보여 더 재밌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두 떠들썩하게 자기만의 효도 쿠폰을 완성할 즈음, 내내 조용히 웃고 있던 솜솜이의 효도 쿠폰이 보였다. 솜솜이는 빈칸에 '내가 건강하기'라고 적었다.


"솜솜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신선한데?"

"아빠가 건강이 최고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내 생각과 내 마음으로 부모님을 바라보지 않고, 부모님의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그런 시선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내가 뭘 해드리면 좋아할까를 고민하지 말고, 내가 어떤 모습인 것을 부모님은 바라실까를 고민하는 시간.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무탈하게 지내는 것. 부모님이 바라는 건 딱 그것뿐이라는 걸 알지만, 속 편한 둘째 딸의 이기적인 마음인 건 아닐까 염려증이 나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나는 마음을 다해 부모님이 좋아하실법한 깜짝 선물을 산다. 취향을 잘못짚은 얄궂은 선물보다는 현금을 가장 좋아하시겠지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말씀하시겠지만.


 비록 우리 어린이들이 투덜거리면서 만든, 조금은 타성에 젖은 카네이션일지 몰라도, 그 손때 묻은 작품들은 여전히 특별하고 소중하다. 어린이들이 카드 속에 꾹꾹 눌러쓴 진심 어린 문장들을 빌려 나의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숙제 미루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할게요. 건강하세요. 영원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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