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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0

[주짓수 에세이] 고통보다 소중한 것

멋진 미련함이란?

주짓수가 즐거운 이유에 스파링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합을 맞추어 몸을 섞는 스파링은 마치 파트너가 필요한 춤 같기도 하다. 그런데 승부욕 때문인지 스파링을 하다 보면 격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무리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왼쪽 무릎에 이상이 오곤 한다. 설명하자면 무릎 주변의 인대가 어딘가에 걸려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무릎에 찌릿찌릿 통증이 생기고 다리가 일정 각도 이상으로 펴지질 않는다. 강제로 다리를 쭉 폈다간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 이런 증상을 겪었을 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스파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기에 엉덩이를 질질 끌고 구석으로 가 쉬어야만 했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제는 요령이 생겼다. 다리를 접은 상태에서 무릎 바깥 부분으로 바닥을 툭툭 치면 괜찮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닥에 부딪치는 충격이 어딘가에 걸린 인대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게끔 도와주는 주는 것 같다. 이제는 스파링을 하다가 무릎에 문제가 생겨도 바닥을 툭툭 쳐가며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스파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짓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리해서 스파링을 하다가 무릎인대가 파열된 적이 있었는데 그 부위가 아직까지 말썽인 듯싶다. 크게 다쳐 깁스까지 했었지만 재활운동 한 번 하지 않았었다. 이제 와서 병원에 가봐야 운동을 쉬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련한 나는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계속 주짓수를 한다.



이처럼 가끔 무릎이 말썽일 때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부상 때문에 주짓수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몸을 다치는 것보다 주짓수를 못하게 되는 것이 나에겐 더 슬픈 일인가 보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의 나는 뭘 하다가 작은 피해만 입게 되어도 “이런 걸 내가 왜 해가지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왜..."라 후회하기 바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보다 우선인 게 생긴 것이다. 그래서일까? 무릎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정상적으로 마치게 될 때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아... 나는 참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구나...” 잊고 있었던 과거 이기적이었던 내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기심은 타인보다 내가 우선일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기심이 강할수록 타인에게 피해받는 상황을 극히 꺼려하게 될 것이다. 나의 지독한 이기심은 다가오는 아주 작은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어 영화관에서 잡음을 내는 사람 때문에 집중하는데 방해를 받는다거나, 지하철에서 내리려는데 내리는 사람보다 먼저 타려는 사람들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게 될 때면 그들을 진심으로 경멸했다. “너 때문에 내가 왜 피해를 받아야 되는데?”싶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사랑이라 떠들었던 관계에서 조차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애인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차질이 생긴 적이 있었다. 애인이 급작스럽게 아프게 된 바람에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숙소에서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애인이 아파서 누워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위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쓰레기 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었기에 말을 최대한 아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내 감정이 말에서 드러날까 봐. 하지만 눈빛, 태도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은 감출 수가 없었는지 누워있던 애인은 결국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이처럼 이기심이라는 흉기로 한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던 기억들이 머릿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었다. 슬프지만 이렇게 이기심의 끝자락에 서있는 사람이, 사랑의 ㅅ자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란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변화 없는 내 모습,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느껴지는 고통보다 주짓수가 먼저인 것처럼 고통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와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 ‘멋짐’과 ‘미련함’은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멋지게 미련해지고 싶다. 무릎의 통증과 주짓수, 이 두 가지의 경험이 변화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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