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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0

[주짓수 에세이] 신체의 재발견

정신보다 우선시 되어도 괜찮은 신체

주짓수를 다시 시작할 무렵, 나의 우울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원인 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져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었고,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야만 했다. 옥상에 서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면 별에 별 생각이 다 들곤 했다. 넓은 세상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나,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결국 그 끝은 ‘내가 못나서’가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학교에 들어갔고, 졸업을 했고, 취업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단추가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턴가 잘못 꿰어졌는지 마지막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단추. 제 역할을 잃어버린 마지막 단추처럼 나 또한 가야 할 곳을 잃어버린 채 세상에 혼자 놓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잘못 꿰어져 남은 단추가 아니라, 애초에 달리지 말았어야 할 불량 단추는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취업준비를 하느라,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약 5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기간 동안 운동을 등한시했다. 취업준비를 출발점으로 삼는 사회생활은 나에게 이어달리기와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달리기였기에 다른 곳에 눈 돌릴 여력이 없었다. 취업준비를 하던 나, 그런 내 앞에 섰던 사람은 손에 바톤이 쥐어지자마자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렇게 뛰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고, 나도 저렇게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손에도 바톤이 쥐어져 있었다. 특별할 것 없었던 나에게 다른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일단 뛰고 봤다.


달리기는 탈진과 짝을 이룬다. 사람인 이상 끊임없이 달리면 탈진할 수밖에 없다. 운동을 하지 않아 체력이 약해졌는지, 예민한 탓에 체력 소모가 빨랐는지 나에게 탈진은 남들보다 일찍 찾아왔다. 달리기가 삶의 의욕에서 비롯된다면 나는 삶의 의욕이 일찌감치 탈진된 셈이었다. 초반에는 줄어드는 삶의 의욕을 회사 동기들과의 술자리로 메울 수 있었다. 그것으로도 메워지지 않을 땐 책을 펼쳐 들었다. 우울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그 녀석은 나를 괴롭히는지 책을 통해 알고자 노력했다. 읽어야 하는 책의 목록은 한없이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 누구의 말도 나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의 반나절은 술에 취해있었고, 나머지 반은 책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 둘로는 역부족이었다. 책을 읽어대도 삶의 허무함은 가시질 않았고, 현실 도피와 같은 동기들과의 술자리도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삶의 의욕은 날이 갈수록 줄어만 갔다. 메울 방법을 찾기 위해 시작된 불면이라는 방황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때가 찾아왔다. 살아야 할 이유를 대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다. 이상하게도 그때 용기가 생겼다. “바닥을 찍다 못해 파고 있는 내가 못할 게 뭐 있어?”라는 심보였다. 그 순간 나는 바톤을 집어던지고 운동장을 뛰쳐나왔다. 책상 정리를 위한 상자에 챙겨야 할 건 한 가지뿐이었다. 소멸되기 직전인 삶의 의욕이다.



퇴사 바로 다음날 남은 의욕을 몽땅 털어 다시 주짓수를 시작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 그런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주짓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짓수를 쉰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재밌었다. 주짓수를 하며 땀을 흘릴 때면 우울감이 끼어들 겨를이 없었다. 잠에도 팔리지 않아 재고가 넘쳤던 정신은 그렇게 주짓수에 팔리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밖에 나와 쐬는 바람은 나에게 미소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내려가기 바빴던 입꼬리가 올라간 건 오랜만이었다. 될 수 있으면 그 순간을 매일 맞이하고 싶었다. 나에게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일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끝나지 않았던 방황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신체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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