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에세이] 멋의 기준

모든 것은 변한다, 멋에 대한 기준도

주짓수에선 경력자와 초보자, 이 둘은 단짝을 이룬다. 초보자끼리 짝이 되면 기술 연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기에 될 수 있으면 초보자에게는 경력자가 붙는 것이 좋다. 경력자는 초보자의 기술을 받아주고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더 잘할 수 있게끔 도와주곤 한다. 나 역시 체육관에선 경력자에 속하기에 여러 초보자들과 짝을 이뤄 기술 연습을 해왔다. 그들과 나눈 대화는 별로 없었지만 그들의 몸짓을 느끼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몸의 특색은 가지각색이라는 것이다. 힘, 유연성, 리듬감 등 어찌나 그리 각자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사람의 개성은 평소에 우리가 가꾸는 외모나 머릿속보다 몸짓에 더 많이 배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몸짓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몸짓을 접한 여러 사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몸치’다. 초보자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겠지만 몸치는 정말이지 특별하다. 기본적으로 몸은 나무처럼 뻣뻣하며 어떤 동작을 따라 할 때 신체의 어느 부분에 힘을 주고 어느 부분에 힘을 빼야 하는지를 모른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짚어주면 그 부분에 집중하느냐 신체의 다른 부분은 너무도 쉽게 밸런스가 무너져 버린다. 가끔은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만화 속 주인공이 로봇에 탑승하여 로봇을 조종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데 탑승 경험이 적어 조종이 서툰 주인공이다. 마음이 넓지 못한 나는 몸치와 기술 연습을 할 때 종종 짜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기술 연습을 제대로 하려면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한데, 그들은 기술을 받아주는 것에도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가락이 몸에 깔리는 등 예상치 못하게 다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을 그만둔 이후, 좋아하는 운동에서 조차 열정을 보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서 일까? 나는 매일같이 체육관에 나간다. 그런데 나처럼 매일같이 체육관에 나오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주짓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인데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듯 보인다. 나는 그와 몸을 섞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몸치구나, 그것도 몸치 중에 몸치.” 체육관에 일찌감치 나오는지 내가 체육관에 도착하면 몸을 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로 구르기나 짐볼로 몸을 풀고 있다.

주짓수에서 구르기는 기본 중에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잘하는 사람일수록 몸이 동그랗게 말려 부드럽게 구른다. 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척추 분절이 잘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르는 모습은 각진 나무토막과도 같다. 네모난 바퀴가 굴러가듯 위태롭고 요란하다. 누가 보더라도 저러다 목이 꺾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굴러다닌다. 그는 짐볼을 다룰 때도 범상치가 않다. 짐볼 위에서 밸런스를 잡으려면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한데, 그가 짐볼 위에 올라가 있을 땐 마치 힘자랑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짐볼을 터트리는 것이 목적인 듯싶다. 가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사뭇 진지하기만 하다.

그의 진면목은 스파링을 할 때 드러난다. 온몸에 바짝 힘을 준 상태로 머리부터 들이미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성난 황소와도 같다. 물론 주짓수를 꽤나 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공격은 전혀 먹히질 않는다. 오히려 그런 힘은 역이용당하기 쉽다. 나와 그 친구는 매일같이 스파링을 하기에 그러한 장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그는 매번 황소처럼 들이대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탭을 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스파링이 끝나면 그는 매트에 널브러져 숨을 헐떡이며 한동안 일어나질 못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일까? 몸치에 막무가내까지 한 그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간다. 아니, 멋있게 느껴진다 해야 할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나의 부족한 점이 남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초등학생 시절 축구를 좋아했었지만 친구들의 사소한 비난 몇 마디에 축구에 흥미가 뚝 떨어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못하는 모습을 보일 바엔 안 하는 게 나았던 것이다. 어렸던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체육 시간조차 나에겐 고통스러운 시간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칭찬에 인색하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잘함의 기준은 무척이나 높았기에, 그 기준에 비하면 나는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볼품없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자주 얻어맞고, 밟히고, 집 밖으로 쫓겨났기에 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족한 내 모습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마치 죄를 지었지만 들키지 않은 사람이 된 것처럼. 그래선지 사람들의 시선을 꺼려했고, 예상치 못한 시선을 받게 될 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몸은 굳어버렸다. 가족에게조차 내 부족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나는 어떤 고난이 닥쳐도 혼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보통은 되고 싶어 혼자서 애를 쓰고 또 애를 쓴 것이다. 그렇게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마치 그런 모습이 진짜 나인 것처럼 여태껏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이와 관련된 기억이 하나 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들 중 한 명은 클럽에 가는 걸 극히 부정했지만, 친구들의 힘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 되었다. 그가 그럴 만도 했다. 평소 말 수가 적고 무뚝뚝했기에 클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덩치 크고 과묵한 남성상에 부합하는 친구였다. 역시나 친구는 클럽에 와서도 춤은커녕 리듬조차 타지 않았다. 빳빳이 서서 손에 든 맥주나 홀짝일 뿐이었다. 하지만 클럽에서 나와 입이 바빠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친구였다. 친구는 웃으며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 그 사람 봤어? 미친놈처럼 춤추던 사람." 나는 대답했다. “아, 그 박자도 안 맞추고 우스꽝스럽게 춤추던 사람?” 친구는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사람밖에 안보이더라, 뭔가 부럽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듯 시간이 흐를수록 멋의 기준 또한 변해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은 잘하는 사람에서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지금의 난 그런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그들에게는 즐거움만 있다면 몸치든, 박치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무엇보다 그 자유로움을 갈망해온 것 같다.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체육관에서의 내가 몸치인 그 친구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가. 그가 가진 주짓수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기에. 내가 그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