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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0

[주짓수 에세이] 스타일

스타일은 어떻게 갖게 되는 걸까?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주짓수를 하다 보면 종종 이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스파링이 시작되면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스타일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로 초보자들이 아닌 1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고민을 하는 듯 보인다. 아마 자신보다 경력이 낮은 사람들과 스파링을 했을 땐 힘으로 이긴 느낌이 들고, 경력이 높은 사람들과 했을 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스파링이 끝나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실력이 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냥 되는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반면에 실력자들은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상대와 처음 맞닿을 지점에 온 신경을 쏟는다. 상대방보다 한 템포 빠르게 스타일을 살려야만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실력자들은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라는 고민 섞인 말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대답하곤 했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하시면 돼요." 흰 띠 시절의 나는 그런 말을 듣게 될 때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겠지.”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빛이 나는 법이다. 그림에서도, 음악에서도, 문학에서도, 주짓수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쉽게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유별난 사람들이 있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 나는 그런 천재들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타고난 사람들이구나.”하고 말이다. 이 말에는 노력보단 선천성의 힘이 더 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미 갖추고 태어났기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빛이 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던 중 고흐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그 조차 스타일을 찾는데 까지 수년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주관적으로 사용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색감은 그의 스타일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지만, 그의 초기 작품을 보니 수년간 흙빛에 가까운 색감만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영감하고는 어울려도 노력하고는 어울리는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스타일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아니, 없다. 고흐와 같이 천재로 불리는 사람조차 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걸 보면. 스타일이란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보단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것 같다. 한동안 나는 발버둥 치기에 바빴었다. 남들은 잘 몰라야 하는 것을 목적 삼아 주짓수 기술 영상을 찾아보았고, 어떤 작가의 글을 필사해봐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더 골치 아팠던 건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을 너무 흉내 내려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스타일에 관한 고민이 아니었다. 정작 필요했던 건 그냥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런 고민에 빠질 시간에.


매일같이 그냥 하다 보니 나에게도 스타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주짓수에서는 스파링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어떻게 그 방식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발전이 없다고 느껴지던 글쓰기에서는 친한 작가님으로부터 문체가 생겼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스타일이 생기기 이전과 이후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더 큰 재미가 붙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가 편해하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스타일이 자리 잡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가끔 체육관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곤 한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하시면 돼요.” 나 역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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