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짓수를 같이 하는 한 형님께서 블루벨트로 승급하셨다. 5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감안한다면 버거울법한 운동인데도 불구하고 형님은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하셨다.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주짓수를 하셨기에 승급의 의미가 남다르셨을 거라 생각한다. 형님은 과거부터 이런저런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몸에 성한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목뼈를 크게 다쳐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고 하셨고, 양쪽 발목이 부러졌다가 잘못 붙어버리는 바람에 걸을 때 불안정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주짓수를 향한 열정에 비할 바는 아니었나 보다. 형님은 정말 매일같이 체육관에 나오셨다. 다쳤던 목 때문인지 처음엔 기본 동작인 구르기 조차 쉽지 않아 보였지만 어느새 뒤구르기까지 거뜬히 소화하시게 되었다. 형님은 수업 때면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영상을 촬영하셨다. 촬영했던 영상을 돌려보며 매일 복습까지 하시는 것 같았다. 가끔 “작년 이맘때 이런 기술을 배웠더라고요, 다시 보니깐 또 느낌이 다르네요.”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형님의 이러한 열정 때문일까? 나는 형님이 참 멋있게만 느껴진다. 같이 운동을 하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말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형님은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했다. 잦은 스파링으로 인해 불안정하던 발목이 더 악화된 것이다. 보는 사람 모두가 걱정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 보였지만 형님은 주짓수를 멈추지는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루는 형님께서 스파링을 하시다 손가락 부상을 입으셨다. 안타깝게도 스파링 파트너는 나였다. 형님은 엄지를 치켜세운 상태로 나의 도복을 붙들고 있었는데,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서 엄지가 뒤로 꺾여버렸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괜찮으시냐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런데 형님은 멋쩍은 미소를 띠며 대답하셨다. “아이고~ 선배님~ 오늘도 좋은 거 하나 배워갑니다~” 그러곤 손가락에 칭칭 테이핑을 하시더니 다시 스파링을 하셨다. 부상 때문에 스파링을 하지 못하시던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의 스파링을 지켜보던 형님의 아쉬움 가득한 눈빛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어린아이 같았던 형님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하루는 체육관 등록이 끝났는지 관장님께서 형님에게 이번 기회에 좀 쉬시는 게 어떠시냐고 말씀을 꺼냈다. 형님은 고민도 없이 대답하셨다. “하하, 괜찮습니다, 전 끝까지 갑니다.” 조만간 수술을 해야 해서 결국 몇 개월 쉬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전까지는 운동을 멈추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렇게 여전히 절뚝거리시며 매일같이 체육관에 나오신다. 물론 수업 때 촬영하시는 것도 여전하시고 스파링도 빼먹지 않으신다. 손가락과 발목에 칭칭 테이핑을 하시고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몸이 상할 정도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형님의 친구 분들은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고 몸도 성치 못한데 뭐하는 짓이냐 늘 잔소리를 한다고 하셨다. 그럴 때면 형님은 웃으며 대답한다고 하셨다. “야, 너도 한 번 해봐, 얼마나 재밌는 줄 알아?” 덕분에 형님은 친구들 사이에서 미친놈이 되었다고 하셨다. 주짓수에 미친 형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좀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 그때 시작했어야 했는데...” 몇 년 전 형님은 친한 동생분에게 주짓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하셨다. 당시 형님께선 “주짓수? 무슨 자수 같은 건가? 남자 놈이 뭐 그런 걸 한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때 주짓수를 시작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주짓수가 삶의 일부가 되어 익숙해져가고 있었지만 형님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육체의 즐거움에는 늦음이 없다는 사실을. 육체의 즐거움에는 단지 그 대상을 찾았는지 찾지 못했는지 만이, 그리고 찾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남자는 문지방 넘어설 힘만 있어도...”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는 그 말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하고 싶다. “남자는 문지방 넘어설 힘만 있어도 주짓수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