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건 냄새가 난다
신기하게도 상한 건 냄새가 난다. 먹지 말라고 얼른 도망가라고 역한 냄새를 뿜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양배추즙이 상했다
오랜만에 옛날에 사뒀던 양배추즙을 꺼내먹었다.
유통기한이 1년이나 남았는데, 맛이 살짝 이상했다.
직감적으로 상했다는 걸 깨달았다.
'날씨가 선선하니까 괜찮겠지'하고 밖에 꺼내 둔지 벌써 두 계절.
그 사이에 여름이 왔고, 내가 미처 신경 써주지 못했던 그 시간들 동안
직사광선을 직방으로 받으며 힘겹게 버텨냈을 양배추즙의 고난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미안했다. 혼자 살아남기에도 바쁜 나 같은 주인을 만나서
제 쓰임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씁쓸하고 무거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꾸르륵 아파왔다.
양배추즙이 나에게 준 마지막 형벌이었다.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달게 받아냈다.
비로소 나는 마음의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상했다는 사인
상한 것에서 나는 냄새는, 신이 처음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하나의 장치다.
인간 스스로 몸에 해가 되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피할 수 있도록 사인을 준 것이다.
이 사인은 음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상과 꿈, 때로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아마 나도 상한 것 같다.
조금씩 삐그덕 대더니, 결국 맛이 가버렸다.
3개월, 6개월마다 찾아오던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다.
건강부터 소신, 미래까지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총체적인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인생의 경험이 쌓일수록, 한 사람의 우물은 더 좁아지고 깊어진다.
시간이 검증해낸 경험들은 곧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고,
알고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오히려 나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마음이 상해서, 몸이 상한 걸까?
마치 고인 우물처럼 내 인생도 고일대로 고여버려
속에서부터 나는 깊은 악취가 베어 올라오는 것 같다.
이것도 신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보낸 신호일까.
스스로를 더 망가지게 내버려 두지 말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