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어느날 갑자기 알러지
지연성 음식 알레르기 반응은 갑작스러워서 공포스러웠다.
몇시간 내에 먹은 게 없는데 목과 귀 부위가 붉어지면서 간지러움이 점점 온몸으로 번져간다.
겨드랑이와 허벅지, 사타구니 피부가 뜨거워져서 찬물 샤워를 하다보면
곳곳에 모기에 물린 듯 둥그런 포진이 잡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입 주위가 붉어지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아까 발견한 작은 포진들이 점점 퍼져나가며 손바닥 크기로 부어오른다.
아랫배가 구르르륵 거려 화장실로 뛰쳐간다. 속에서 오한이 돋는다.
두피와 발바닥에서도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상 반응이 나타난다.
그제서야 가까운 응급실로 달려간다.
수액과 링거를 빠른 속도로 맞고 나서야 온몸을 덮었던 두드러기가 가라앉고 심박 수가 제자리를 찾는다.
서른을 훌쩍 넘긴 성인의 몸으로, 어느날 갑자기 음식알레르기가 생겼다.
위의 경험은 정확한 알레르기 검사를 받기 전까지 몇 달간 몇 회나 겪어야 했던 일상이다.
정확히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지 모를 때는 먹는다는 행위가 두렵다.
내가 당장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혀 끝의 즐거움을 위해 먹는 이 음식 때문에
뛰쳐나가 링거를 맞고 쿵쾅대는 심장과 오한을 달래며 차가운 응급실 침대에서 한 두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생활과 음식알레르기
먹는 것으로 인해 증상이 발현되기 때문에 음식 알레르기는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알레르기 진단을 받은 직후 3개월 간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항원지수가 약간이라도 높게 나온 음식이라면,
직접 반응을 겪은 적이 없더라도 이 기간에는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10여 가지 음식이 항원으로 쏟아져 나왔으므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아마씨, 은행과 같이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음식도 항원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된장, 보리와 같이 아주 흔한 식재료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 이후부터는 알레르기 반응이 발현되지 않았던 음식들부터 조금씩 시도했고,
현재는 직접 반응을 겪었던 음식인 우유와 계란 흰자만 피하고 있다.
음식알레르기가 생기고 나면 마치 사회적응훈련을 받는 사람처럼 다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식사를 할 때 상대방에게 어떻게 내 상태를 알려야 하는지,
식당 점원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오해가 없을 수 있는지 어려운 것 투성이다.
‘주문할 때 적은 주의사항을 조리할 때 보지 않으면 어떡하지?’
‘계란을 빼고 조리할 수 없다고 주문이 취소되면 어쩌지?’
‘나 때문에 친구가 가보고 싶은 식당을 갈 수 없으면 어쩌지?’
‘점점 사회생활에서 배제되면 어쩌지?’
‘생일 선물로 케이크를 받으면 어떡한담?’
잔걱정 많은 성격이 한 몫 했겠지만,
성인이 되어 음식알레르기가 갑자기 생긴 사람의 일상적응은 어렵기만 했다.
음식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나라
우리나라에서는 우유와 계란이 서구권에서만큼 식탁에 항상 오르는 재료가 아니지만,
한국인이라고 한식만 먹는 것은 아니지 않나.
마요네즈를 잔뜩 넣은 들어간 마카로니, 참깨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머랭을 풍성하게 올린 파이, 부드러운 크림이 올라간 아인슈페너가 나도 먹고 싶단 말이다!
이런 반찬이나 디저트를 내 앞에서 멀리 밀어놓으면
"왜? 이건 계란 없잖아? 이것도 못먹어?"라고 상대가 되묻는다.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로선 그 상황이 달갑지 않다.
샤브샤브의 마무리인 죽이나 볶음밥은 되도록 먹지 않는다.
함께 식사하는 동행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면서 치즈가 들어간 피자는 어떻게 먹을 수 있냐면서 의아해 하는 사람도 많다.
진단 받은지가 언젠데 이제 슬슬 먹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식당에서는 요리 재료 표기가 없으므로 메뉴를 고를 때 플랜B, 플랜C를 마련해 놓고,
점원에게 원픽메뉴부터 특정 재료가 들어갔는지 물어야 한다.
점원 없이 키오스크만 이용하는 무인 주문 시스템은 최악이다!
음식알레르기에 적응중인 사람이라면,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음식알레르기가 생겼다면 이들의 일상적응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내가 몸으로 굴러본(?)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누군가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의연하게 바뀐 일상에 적응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