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북극곰의 여름과 겨울
2018년 11월,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북극곰인 통키가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서 에버랜드로부터 영국의 생태형 동물원인 요크셔 야생공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늦었지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생 공원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2018년 10월, 동물원에서 북극곰 통키가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 동물원에서 태어나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동물들의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북극곰은 없다. 영원히 한국에서 북극곰을 볼 수 없게 되기를.
2008년 봄, 도쿄의 우에노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처음 봤다.
큰 북극곰 한 마리가 제법 빠른 속도로 두 지점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왜 저럴까? 궁금해서 제자리에서 한참을 지켜봤다.
2009년 8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북극곰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좁은 동물원의 수족관에서 커다란 북극곰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북극곰 중 한 마리는 좁은 수족관 안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두 지점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북극곰의 이런 행동이 좁은 우리에서 사는 동물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이상행동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두 마리의 북극곰은 썰매(수컷)와 얼음이(암컷)였다.
2011년, 북극곰은 가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버려진 곰인형처럼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워서 움직이지 않았고, 흰색이어야 할 털색은 금색으로 변했다.
잘 버티고 있는 북극곰이 대견하면서, 본능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안쓰러웠다.
열악한 동물원의 복지문제가 북극곰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몸집이 크고 주거면적과 온도가 예민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북극곰 같은 동물은 함부로 전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이 빨리 와서 보기 싫은 회색 콘크리트 바닥을 눈으로 하얗게 덮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홋카이도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도 북극곰이 있었다.
날씨가 춥고 눈도 많이 오는 곳에 있는 동물원 북극곰은 조금은 나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북극곰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은 우리나라 동물원보다 조금은 더 넓어 보였다. 사육장에는 세네 마리의 북극곰들이 있었다. 1월의 홋카이도에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사육장에 쌓인 눈은 그나마 동물원의 회색 바닥이 가려져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턱없이 좁은 공간에 갇힌 북극곰의 처지는 지금까지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혼자 있던 북극곰 한 마리가 야구 선수의 슬라이딩처럼 미끄러져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 또다시 미끄러져 내려왔다. 덩치 큰 곰의 행동이 귀여워서 계속 지켜보니 북극곰은 쉬지 않고 슬라이딩을 계속 반복했다. 다른 동물원에서 봤던 것과 같이 빠르게 두 지점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이상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덥지 않아서 다행일 뿐 아사히야마 동물원 북극곰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야생 생태계의 북극곰의 상황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비관적이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고, 그로 인한 서식지 감소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북극곰의 개체수가 줄고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채 굶어 죽은 북극곰의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북극곰은 이미 멸종위기 종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많은 국제기구가 북극곰의 보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디 북극곰이 광고 속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상상 속의 동물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