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종류의 요리를 다 못하면 이해라도 갈 텐데 레시피가 어려운 요리는 또 척척 해낸다. 국수도 기가 막히게 말고, 파스타도 나름 맛있게 조리해 낸다. 딱 라면만 맛이 없다. 건더기 스프와 가루 스프 딱 두 개만 넣고 물을 맞춰 끓이면 되는 요리다. 그런데 끓였다 하면 간이 맹숭맹숭하거나 면에 간이 안 배었거나 짜다. 온갖 종류의 간 안 맞는 방법은 몸소 라면을 끓여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못 끓였느냐 하면 원래 못 끓였다. 라면 끓이는 걸 보통 부모님을 통해서 어깨너머로 배울 텐데 우리 집 라면은 늘 좀 독특했기 때문이다. 일단 어머니께서는 라면이 몸에 좋지 않고, 짠 것은 몸에 더 안 좋다면서 라면스프를 늘 반만 넣고 끓이셨다. (나머지는 버린다.) 라면 종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진순이다. (진라면 순한 맛을 뜻한다.) 한강물 진순이는 뭔 짓을 해도 정말 정말 맛이 없다. 맛이 없는 건 알았지만, 내가 아는 라면 레시피는 엄마 레시피뿐인 것을. 라면 스프를 반만 넣어서 맛이 없는 것인 줄은 모르고 반만 넣고 버리는 레시피를 30년 넘게 고수했다.
이런 레시피 탓인지 원체 라면을 안 꺼내먹는 건지 우리 집은 라면을 한 묶음을 사면 몇 달을 두고 먹었다. 한 십 년 전쯤 우리나라 전쟁 날 것 같다며 자취를 시작한 기념으로 아버지께서 라면 한 박스를 사주셨는데, 라면 한 박스가 통째로 유통기한이 다될 때까지 뜯지도 않고 있었을 정도였다.
아참, 물 양이 선으로 잘 그어진 컵라면은 맛있게 잘 먹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니까. 하지만 스티로폼에 물을 부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가끔 어머니가 그릇에 따로 담아주셨다. (뚜껑을 덮어도 맛이 한참이나 떨어진다.) 야외에서 먹을 땐 물이 선 위로 한참 부으시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뭐랄까 물탄 라면 맛에 혀가 적응도 했다.
결혼하고 정말 정말 놀란 일이 있었다. 집에 라면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오늘만도 짜파게티와 신라면이 각각 한 묶음씩 우리 집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있는데도 말이다. (요새는 열라면 순두부에 빠져서 쇼핑목록에 추가되었다. 프랑스에서 와서 매콤한 것을 먹고 잠들어야했을 때 딱 이걸 끓여 김치를 한 통을 다 비웠던 전력도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내가 그걸 막지 못한다는 거다. 내 남편은 라면을 정말 기가 막히게 끓이기 때문이다.
그게 다 라면에 진심이라서 그렇단다. 어느 정도 진심이느냐면 라면용 양은 냄비를 두 개나 샀을 정도다. (열 전도율이 높아서 물이 빠르게 끓는다는 게 첫 번째 핑계였는데, 내가 보기엔 뚜껑에 먹고 싶어서 냄비를 사달라고 한 것이다. 뚜껑 두 개 다 잃어버린 탓에 이제 냄비를 하나 더 산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어쨌든 분식점 맛이 나오길래 대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뒤에 쓰인 레시피대로 끓인다고 한다. 뒤에 쓰인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아니, 그게 맛의 비결이란 말이야? 레시피를 보니 라면 스프를 다 넣고 물을 550cc 넣는 것뿐이다. 물 양도 정확해야 하고, 스프도 다 넣어야 하고 어쨌든 지금까지의 내 레시피와 같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정답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걸 몰랐다는 걸 믿고 싶지는 않다. 분명 속임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을 두고 지켜본 결과 나보다 물을 적게 넣고 스프를 다 넣는 것 외에는 다른 게 없다. 아니 이렇게 쉬운 게 비법이었다면 대체 30년간 잃어버린 나의 라면 맛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런데 비법을 다 알고도 비법대로 못 하겠는 건 분명 정해진 레시피 말고도 맛있는 다른 레시피가 있을 것이라는 나의 지나친 학구열 때문인 걸까,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라며 물 양을 내 멋대로 넣는 나의 비대한 자아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