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직장을 막 잡을 무렵에 어머니께서 나와 동생을 불러다 놓고 보험 하나를 가입시켰다. 한 13만 원쯤 하는 꽤나 비싼 것인데, 어머니가 내게 해가 될 일을 권유하시겠어하며 덜컥 설명만 간단히 듣고 (2091년까지 보장해 준다) 가입을 해버렸다.
이 외에도 나는 어릴 적 가입해 놓은 실비와 입원일 보장 등이 섞인 보험(9만 원 정도 했다)까지 세 개 정도를 갖고 있다. (몇 년 전 아예 독립하기 전까지 아버지 등골에서 척수를 빼어 일부 보험금을 지불했다. 척수 얘긴 말이 그렇다는 거다.)
이러이러하게 대충 알고 있었는데, 새해부터 가계부를 각 잡고 써보자는 마음이 자꾸만 들다가 뱅크샐러드 앱을 들췄다. 아니, 그게 몇 년 새 9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보험금 액수가 훌쩍 뛰어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나는 내가 돈을 내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었다. 자동이체를 시켜놓아서였다. 다달이 열심히 납부한 게 벌써 100회기씩이 넘었는데 액수만 3천만 원 가까운 돈이다.(앞으로도 그만큼을 더 내야 한다. 둘 다 20년 만기다. 이걸 엔비디아에 넣었으면!)
하여튼 보험부자인 나와 달리 남편은 회사에서 해주는 보험 하나로 20대부터 지금까지 버텨왔다. 아플라치면 병원을 가는 걸 보면 보험을 쏙쏙 잘 빼먹었을 거 같은데, 놀랍게도 작년에 처음 보험금을 신청해 받았다고 한다. 뭐 회사에서 불이익을 줄까 봐 그랬다나 뭐라나 하기는 하는데, 아마 몰라서 못쓴 거 같다. 아기처럼 돈이 진짜 들어왔다며 얼마 전에 환불금 들어온 걸 보여주는 걸 보면 말이다.
몇 달 전, 고심 끝에 태아보험을 가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태아가 잘못될 위험이라거나 아니면 출산 중 산모 보험 같은 걸 고민고민해서 들어놓는다고 한다. 이게 소아과 가서도 도움이 된다나 뭐라나. 초음파 영상을 저장해 두려고 가입한 어플에서 뭘 선택을 잘못했는지 일주일에 한 번은 태아보험 가입 권유 전화가 오기도 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나라에서 전액 다 대준다는 우체국 태아보험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딩크라는 자아정체성이 꿋꿋하게 확립되어 있던 내게 일단 태아보험이라는 세계는 너무나 넓고 복잡했으며 아기도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을 것이란 미신 같은 믿음이 있어서였다. 심지어 (돈 벌어오는) 남편도 거의 무보험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돈 쓰는 태아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어두자) 아마 태어나고 나서도 남편의 직장 내 보험에 끼워 가입시켜두지 싶다. 올해는 남편이 부디 출산지원금 같은 특약을 신청했기를 바란다. 갑작스러운 분유값에 보태게..(어쨌든 태어나자마자 소아과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린다고 하니, 벌써 보험료, 병원비로 지갑 돈 세는 소리가 쩔렁쩔렁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