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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때로 Aug 25. 2023

(6) 오리 친구

끠.

아까 만났던 오리는 뒤뚱뒤뚱 걸으며 나와 발맞춰 걷고 있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오리였다. 나는 오리가 친구같이 느껴졌다.


"뻥튀기 맛이랑 솜사탕 맛이 비슷하더라? 너도 먹니?"

"너 과자 안 먹어봤지?"

"할머니는 과자 진짜 싫어하는데, 음식은 짜게 만들어. 과자 먹어서 몸이 나쁜 거나, 짜게 먹어서 나쁜 거나 그게 그거 아니야?"

"엄마는 가끔 3분 카레도 데워서 줬어. 피곤할 때. 근데 난 그게 맛있었어. 엄마도 쉬고, 나도 맛있고~."


"끠."

오리는 내 말에 열심히 맞장구쳤다. 푸하하하. 귀여운 오리의 울음소리 덕에 나는 더욱더 신이 났다. 수다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오리야, 너 어디 가서 말하지 않을 거지? 이거 비밀인데..."

내친김에 나는 학교 친구들의 비밀들도 다 털어놓았다. 실컷. 아휴, 속 시원해.


몇 달 전부터 아빠는 나를 피했다. 아니 나와의 얘기를 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계신 할머니랑 얘기하면 할머니는 다 나보고 참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잔소리하다가 엄마 욕으로 마무리지었다. 내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진짜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에 대한 말만... 그다음에는 성적, 그다음에는 학교 생활, 그다음에는 친구...


그렇게 참았던 말들이 "지금이다." 하며 터지듯이 나왔다. 옛날 얘기도, 그 옛날의 옛날 얘기도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이어졌다.


"4살 때 내가 엄마한테 엄마꿈꾸고 싶다고 했대.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하면 엄마꿈꿀 수 있냐고 물었대. 그랬더니 내가 엄마 이불 덮고 자면 된다고 그랬대. 나 진짜 천재지?"


'어?'

잊고 있었던 일이 번갯불처럼 생각났다. 이곳, 그리고 이불.. 모든 것이 우연도 아니고 꿈도 아니었을 것 같은.. 그 순간 내 발이 멈췄다.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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