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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Feb 23. 2020

분노의 주부

글 쓸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설거지나 하자.

주부에 대한 정의를 나무 위키에서 찾아봤다. 난 남자이면서 주부 역할을 한다. 남자가 주부일 때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중점적으로 간략히 간추려봤다.



주부 [출처 : 나무 위키]

 크게 전업주부와 맞벌이 주부로 나뉜다고 한다. 그냥 부부 둘이 살면서 하는 집안일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도 육아가 시작되면 아무래도 맞벌이 주부의 부담이 심해진다. 직업은 아니지만, 특정 신분을 지칭한다.

 특히 '배우자가 집안일을 분담을 안 하거나 도와주지도 않는 데다가 육아까지 담당해야 하는 맞벌이 주부'의 케이스는 거의 절대적으로 죽어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런 경우 곧 전업주부로 전직할 확률이 높지만(...)


중략..


 남자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자 전업주부'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정치인 심상정의 남편 이승배는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도맡아 하며 아내를 외조하고 있다.


남자이지만 주부 역할을 담당하는 캐릭터

남자의 경우 대개 아내와 사별하거나 실업 등의 사유로 가사 일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극소수지만 아내를 대신하여 주부로 사는 경우도 있다. 취집이라고 부르기도. 물론 회사 다니면서 주부일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난 아내와 사별하지도 않았고 실업도 아니며 아내를 대신하여 주부의 역할을 하지만 풀타임으로 주부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주부일을 하긴 하는데 일반적인 직장과 조금 달라서 100% 이것도 아니다. 그래 나의 상황을 정의하기에는 아직 사회는 다양한 케이스를 많이 배출해내지 못했거나 조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인력도 없을 것이고 필요도 못 느끼는 게 현재의 사회분위기이긴 하다.


남자가 주부를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도 평범한 남자가 아닌, 경상도 출신으로 아버지가 요리를 한 것을 거의 본 적이 없고 집안에 아들만 있었던 출신이라면..

그래 내가 그 출신이다. 나는 경상도 출신의 남자로 집안에서 남자들이 집안일을 한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나의 아버지는 다른 경상도 남자에 비하여 자상한 편이어서 설거지와 청소기는 돌리신다. 그리고 최근에는 혼자도 요리를 잘해 드시는데, 어릴 적에 그러한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 집안일과 아이들을 보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역할이었다.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였고 분위기이기도 했다.


그래, 난 그 누구에게도 집안일과 요리, 육아에 대해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 주변에 그걸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의 상황은 그것을 다 해내야 하는 상황이고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나의 이 상황을 전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한다.


그녀는 밖에서 일하고, 나는 안에서 일한다.


아이들의 픽업, 씻기는일, 저녁을 먹이는 일, 청소하는 일, 빨래하는 일, 빨래 개는 일, 아이들 병원에 데려가는 일, 학교 숙제 챙기는 일, 필요한 물건 쇼핑하는 일, 일일.. 아 일이 끝이 없다. 그리고 이 일은 매일 반복된다. 거기다가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데, 이 세 아이들은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아.. 물론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도 엄청 많다.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하하하하

아니 실제 많기는 하다. 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즐겁고, 자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집안일도 잘 못하지만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의 자부심도 있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보다 내가 조금 더 잘한다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자신감도 넘친다.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사회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평가되긴 하지만 말이다.




분노의 주부.

이 글의 제목은 분노의 주부다.

주부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까? 고민하다가 아내가 소스를 줬다. 분노의 주부.

아 지금 딱 나의 상황이다.


도대체 일하러 나간 아내는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오늘도 야근이라고 통보했다. 정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일은 잘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인기도 자꾸만 늘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자꾸 반복되어 일이 더욱 많아진다.


집안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발전이 아니고 점점 퇴보됨을 느낀다. 아이들은 자라서 나에게 기쁨을 주다가도 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데 계속 뭔가 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밥 먹다가 싸우기도 하고 어지럽히고 뒤처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 한숨 쉬고 싶지만 쌓여있는 빨래와 남아 있는 집안일이 산더미다. 그렇게 집안일까지 다 하고 나서야 나의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힘은 다 빠졌다. 내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데 할 힘도 없고 의욕도 완전히 다 사라졌다. 결국 유튜브나 보다가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게 마감하는 하루는 정말 고단하고 괴롭다. 그리고 내 주변에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은 다들 뭔가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대화가 잘 안 되는 아이들만 상대하고 있다. 우울증이 마구 밀려온다. 겨우 나를 챙기려고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과연 내가 이것을 지속적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삶이 반복되다 보면 점점 분노가 쌓인다.


 그래서 남편이(아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화살은 그(그녀)에게 돌아간다. 그냥 밉다. 나만 죽으라고 고생하는 것 같고 그(그녀)는 행복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자기도 힘들다고 하지만, 내가 힘든 것에 비하면 세발에 피다. 할 수만 있다면 역할을 바꾸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보니 더욱더 괴로워진다. 그래서 쌓인 분노는 결국 그(그녀)에게 막 쏟아진다. 그래도 그(그녀)에게 쏟아내는 건 다행이다. 아이들에게도 분노가 종종 표출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렇게 쌓인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부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같이 이야기할 그 어떤 주부 친구가 없다. 여자들도 차별을 당하지만, 남자여서 차별을 당하는 건 더 크다. 누가 나를 이 괴로운 현실에서 구원해줄 수 있을까?


독박 육아를 구원해 줄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 아무도 구원해 줄 수 없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누구도 이 육아와 가정일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잠깐 만나서 떠들 때는 좋지만 그 좋은 상황을 지나고 나면 꽤 무거운 현실이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 있다. 결국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내야 한다.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앞에 닥친 일들을 빠르게 하나씩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


글 쓸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설거지나 하자.

글 쓸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청소나 하자.

글 쓸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자.

글 쓸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밥이나 하자.


이것이 바로 분노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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