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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Feb 29. 2020

독빡육아 아아악!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아이와 한 백 년 살고 싶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나의 아내를 열렬히 사랑한다. 때로는 열렬히 미워하기도 한다. 특히 오랜 시간 계속 같이 있을 때 이러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연애할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필요 없고 우리 둘만 있으면 행복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 보니 우리 둘만 있는 세상은 그다지 행복한 세상은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무인도에서 아내와 단 둘이 지내는 건 무척이나 로맨틱한 생각이지만 또 상당히 위험한 생각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란 홀로 살 수 없고 둘만 살 수도 없는 존재론적 물음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육아도 동일하다. 나는 때로는 나의 아내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피가 섞여서 그런 것인지 나랑 닮은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자녀들을 아내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여보 미안해!)


내가 그렇게나 사랑하는 아내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이 미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조차도 너무 듣기 싫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자초하는 건 역시나 오랜 시간 지속되는 독박 육아다. 연인 사이를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떨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같이 있으면 그 사랑을 지속하기에는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한계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도, 사랑하는 아이들도 너무 오랫동안 붙어 있으면 위험하다.




[엄마와 아들, 키르키즈스탄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살면 정말 행복할까?

저 푸른 초원 위에 아이들과 우리만 놀면 행복할까?


사람에게는 독특하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에게 없는 부분을 발견하고 서로를 도와주면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욕구가 지금의 도시문화와 나라를 건설하게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터넷의 발전과 SNS를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유도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박 육아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거스르는 행위가 된다.


저 푸른 초원은 너무나 좋지만, 아이와 단 둘이 초원에서 노는 건 조금 외롭다. 아마도 아이와 진지하게 노는 법을 못 배워서일 수도 있고 여전히 대화를 조금 편하게 할 수 있고 언어 수준이 비슷한 어른 친구끼리 노는 것이 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른들의 대화는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만, 아이들과의 대화는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입장이 크다.


결국, 푸른 초원보다 중요한 건 최소한 마음 맞는 친구 1명, 그리고 그 친구의 아이, 나의 아이 이 정도 조합이 있으면 최상이 된다. 푸른 초원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 맞는 부모 그룹.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다.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그룹 1 정도 있으면 된다. 그러한 그룹, 친구를 만들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러한 그룹이 생긴다면 육아는 한결 쉬워지고 삶의 질은 상당히 향상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거의 모두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바쁘다. 특히 한국인의 삶은 너무나 바쁘고 각자 삶을 돌보기에도 시간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그냥 독박 육아다. 이 독박 육아를 현실 속에서 최대한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된다.


해결책은 결국,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이상을 저기 멀리 방구석 어딘가에 숨겨놓고 나 혼자 독박 육아해야 한다는 현실을 절실히 깨닫고 이 안에서 최대한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나와 아이의 정신건강에 좋다.


그 터득한 방법, 그리고 습득하고 있는 방법은 몰입이다.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아이의 특징, 말투, 성장, 관심사, 행동 등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찰 속에서 인간에 대한 또 다른 배움을 느끼고, 삶에 대해서 자기만의 철학을 세워가는 일이다. 그것이 육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고 기쁨이다. 


육아는 고통스럽고 처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삶의 처절함과 실존을 정확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어떤 인간 세계에서 드러나는 외부적인 모습으로도 인간 삶의 실존적인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외부세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육아라는 차갑고도 뜨거운 그 현실에서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배움이 가능하다.


나는 때로 육아를 하면서 일도 생각하고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습관은 육아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만다. 그 어떤 외부세계에서 내가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육아를 통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데, 그 기회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들이다. 아이가 똥 싸고 떼쓰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는 각종의 행위들 앞에서 나의 본모습은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생활 가운데는 체면과 나의 직업적 위치 등으로 나의 속마음을 감추는 경우가 많고 이익과 관계가 있으므로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집안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는 그 어떤 것도 방해받지 않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아이와의 삶은 나를 온전히 그대로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이 시기를 놓치면 사람으로서 또다시 주어진 성장의 기회를 온전히 놓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를 지난다고 모두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시간임에는 분명하다.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곳.

그러하기에 가장 진실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곳.

그 최적의 장소와 시간은 바로 독! 빡! 육!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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