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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으로 가는 길

고난의 여정

by 바다 김춘식


미지의 땅답게 우리나라에서 남극을 가는 여정은 매우 지루하고 힘든 과정입니다. 남극에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지가 두 곳, 킹조지섬에 위치한 세종 과학기지, 남극 대륙에 장보고 과학기지가 있습니다. 가고 있는 곳은 장보고 과학기지로 벌써 준공 후 6년이 지난 곳이기도 합니다.

장보고기지로 가는 길은 매우 멉니다. 인천 공항에서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까지 열 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다시 국내선으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까지 한 시간 반이 소요되는 여정입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남극까지는 아라온호를 활용하거나 이탈리아 극지연구소와 공군에서 운영하는 공군 수송기(C-130)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아라온호로는 8일 정도 소요되고 비행시간은 약 일곱 시간 여가 걸립니다. 일정에 따라 이번에는 수송기를 타고 남극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보통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남극을 가고자 수송기를 타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송기가 이륙하는 일정보다 보통 2일 정도 먼저 도착해 대기하게 되는데 남극의 예측불가한 날씨에 비행기 일정이 들쑥날쑥하기에 변동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일정도 마침 8시간 정도 당겨져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를 하지 않아 좋았지만 예약된 호텔비는 그냥 날리고 말았습니다. 남극 프로그램에 참가하자면 흔한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출발 두 시간 전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의 미국 남극 수속장에서 일반 항공기 탑승할 때와 유사하게 수속을 합니다. 특이하게도 출발지가 뉴질랜드임에도 미국 남극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사람들이 합니다. 아마 재정상 남극 사업 지원이 녹녹지 않는 뉴질랜드로서는 미국 남극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남극 사업에 적지 않는 지원을 받았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미국 탑승 수속


수속은 비교적 간편하게 진행되었는데 비행기의 허용 중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남극기지에 필요한 보급품, 개인별 몸무게와 화물 무게를 계측하고 인원 점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남극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각각 국가가 다르지만 목적은 유사하게 과학자를 비롯하여 기지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기술자 그리고 연구를 돕는 조력자 들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번 비행기를 같이 탈 사람들은 총 36명, 대한민국 사람 6명 외에 이태리, 프랑스 분들이고, 프랑스에서는 장관 두 분과 방송국에서 취재 촬영차 오신 분들이 있어 나름 그 들에겐 수속장이 분주하게 보였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공항에서 탑승


소문은 들었지만 수송기를 타자 마자 황당함에 입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초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런 비행기를 타고 7시간 비행을 한다니요. 공군을 다녀오신 분은 알겠지만 수송기는 붉은 끈으로 등받이를 만든 간이 의자가 양쪽으로 평행하게 설치되어 탑승자가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시선을 둘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옆자리 사람과의 간격도 여유가 없어 밀착 착석을 하게 되니 상상초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순간 쿤타킨테의 노예운반선이 떠올랐습니다. 몇 시간 우리는 그냥 화물이 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탑승전에 주는 귀마개를 받았는데 무슨 용도인지 몰랐다 이륙하고 고마원 존재임을 실감했습니다. 엔진 소리와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음은 심장을 울리는 저음의 소리에다 모든 전자기기의 소리를 파괴하는 위력을 지닌 엄청난 소리였습니다. 영화도 볼 수 없고, 음악을 들을 수 없이 지루한 7시간의 비행을 하는 것입니다. 마주 본 좌석 배치로 인해 다리를 펼 수 없어 오는 무릎관절 고통과 소리에 남들보다 민감한 나로서는 비행 내내 정신이 혼미하였습니다. 남극행 비행 후에는 출장 시 절대 이코노믹 좌석에 불편해하지 않을 테고 어느 항로 건 겸허한 자세로 비행기를 타리라 다짐을 했고 실제 그 이후 이코나믹석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수송기 내부 좌석


비행에 지친 프랑스 과학자들


어째던 수송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한 시간 일찍인 여섯 시간 만에 테라노바만 이태리 기지 앞 해빙 활주로에 굉음을 내며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해빙 활주로는 2미터 이상이 되는 해빙 위에 가설한 활주로로 11월 남극에 여름이 되면 자연스레 녹아 폐쇄되는 임시용이기도 합니다. 공군 안내원이 배려인지 절차 인지 모르지만 Korean을 찾더니 한국 사람을 우선 내리도록 하여 줍니다. 수송기 사다리 위를 천천히 내려와 해빙 위에 첫발, 첫걸음, 첫 호흡, 첫 하늘 이 모두 감동과 함께 사방이 하얀 빙벽과 눈으로 덮인 산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왔어요. 남극에.


남극에 착륙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라는 안내에 따라 들어온 시야에는 공교롭게 백야임을 알리는 눈부신 태양을 등지고,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기지대장님과 일부 대원님들이 이동 차량과 함께 환영을 해주심으로 남극에서의 짧은 체류가 시작되었습니다.


환영 나온 기지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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