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노랑 구절초
구절초 너의 순수한 향기에 반한 벌과 나비들이 끊임없이 날아든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
색깔별로 꽃을 피워준 꽃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 때리고 바라보았지.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는 그때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야.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지인이 뜬금없이 나의 정원에 방문한 거야.
불안정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더군.
청계산 자락에 있는 앙증맞은 나의 정원까지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다는데.
나는 고구마와 따뜻한 차 한잔을 꺼내와 대접했어.
구절초가 정면으로 보인 곳에 테이블을 놓고 마주 앉았어.
말없이 차를 마시는 동안 지인의 눈동자에 보인 평안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거 같더라고.
다행이다 싶었어.
이어서 지인이 말하더군.
해마다 가을이 오면 구절초 너의 향기를 맡아야만 마음이 안정되었대.
이유를 묻자 이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이었다고 하더라고.
뭐랄까, 하얗고 노랗고 빨간 구절초 너의 친구들을 보고만 있어도 평온해진 느낌이라면서.
그런데 나도 때때로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거든.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적당한 아픔은 있는 거 같아.
물론 어떻게 잘 풀어가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행히 나는 좀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지인의 옷차림을 보니까 너의 꽃말이 생각나더라 가을 여인.
문득 나도 가을 여인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말인데 작가의 정원에서 퇴근하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볼까 해.
가을 향기 물씬 풍기는 멋스러운 옷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거든.
해마다 가을이 오면 대가 없이 보내온 너의 통 큰 선물에 감동하는데 너에게 난 무엇을 줄까.
방금 생각났어.
더 많은 사람들이 너를 만나 너의 향기에 취하면 좋을 거 같아.
구절초 너의 무한한 사랑 감사해.
From. 이엔에프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