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서 퇴사하며 나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는 ‘아르바이트하기’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평생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조교로 근무하거나 공공근로를 해 본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나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작은 로망이 있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을 보면 멋있어 보였다. 내게 아르바이트란, '땀 흘려 버는 돈’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근면성실'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용돈을 충분히 주셨기도 했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고 빨리 취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나의 경력 없음이 항상 부끄러웠고, 스스로를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해본 사람으로 낙인찍어왔다. 그래서 그런 나의 자격지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아르바이트를 해봐야겠다고 멀찍이 생각하곤 했었다.
이제 퇴사를 했으니 때가 된 것이다. 특히나 두 달을 내리 집에 혼자 있다 보니 히키코모리가 될 것 같기도 했고, 가끔씩 친구랑 통화라도 할 때면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 더듬거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깜짝 놀랐기 때문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말도 안 하면 퇴화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로 수입이 들어오면 돈에 대한 부담이 줄어 당장에 오른 도시가스값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교통이 편리해 출퇴근에 무리가 없으며, 단기알바이면서, 짧은 시간만 근무해서 내 시간도 충분히 확보가 가능한 곳. 하지만 일용직이 아닌 곳. 수시로 알바몬, 알바천국을 들락거리면 조건에 맞는 아르바이트를 가끔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FA시장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단 자기소개서부터 문제였다. 서른 한 살에 경력이 없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일단 공공기관 경력을 넣었는데, 지원거절의사를 밝히는 메일이 도착하고, 똑같은 공고가 다시 올라왔다. 알바시장에서 정규직 4년 경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스펙인가 보다 싶어 내 경력을 다시 다 지웠다. 대신 친구의 조언에 따라 ‘믿고 맡기실 수 있도록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방학기간이어서일까. 좋은 조건의 아르바이트는 떴다 하면 지원서를 올리기도 전에 알바가 구해지는지 다음날 곧바로 공고가 내려갔다. 남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1년 내내 일해줄 사람을 구하는 곳이 전부. 귀하게 얻은 내 시간을 몽땅 아르바이트로 날릴 순 없기에, 조건에 맞는 곳에만 지원서를 넣으며 안되면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아르바이트가 구해졌다. 병원 아르바이트다. 전화통화로 어느 어느 때 근무가 가능하다 하니, 담당자분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셨다.
나름 근면성실함이 외모에 묻어나는 나이지만, 걱정이 됐다. 단기로 근무하려는 나를 안 좋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공공기관에서 퇴사한 지 얼마 안 된 것을 안 좋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걱정과 달리 면접은 수월했다. 퇴사한 내용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행정업무든 뭐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어필했더니 바로 다음 주부터 나오라고 하셨다. 오예! 나, 아직 죽지 않았구나!
그렇게 퇴사 후, 생애 첫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