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사로잡히다
칠순을 지나고 그 다음해에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계셨다. 칠순잔치를 하지 마시고 여행을 가셨으면 부담이 되지 않았는데 이중으로 돈이 들어가는 상태가 된 셈이다.그 당시 우리 가정 형편이 안 좋을 때였다.
공사비용도 받지 못하고 1억까지 떼인 상태에서 어찌 200만원이란 돈을 내 놓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욕은 먹기 싫고 도리는 해야 하는데 돈은 없지 죽을 맛이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점점 고통에 쌓였다. 또 어떤 식으로 욕을 할지 싶을까 하는 생각에.
남편이 둘째에게 형편이 안되니 좀 더 내라고 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남편이 부탁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어쩔 수 없는 상태여서 어머니께 아쉬운 소리를 처음으로 했다. 결혼 20년만에 죄송하다고 잘 다녀오시라고 입으로만 했다.
난 혼이 나간 상태. 그 당시에 공황장애가 있어서 약을 먹는 상태였다. 불안함은 머리 끝까지 올라온 상태 추석이 지나고 시아버지 제사가 있던 날도 119에 실려갔다 와서 제사 음식을 언니가 도와줘서 했다.
어머니 생신때도 선물까지 사다 놓고 쓰러져 119에 실려가서 가지 못했다. 매번 무슨 날만 되면 119냐고 했을게 뻔했다. 그 당시에는 점점 병이 악화되기 시작했을 때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진 병으로 하루하루가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생신 뒤에 또 제사가 돌아왔다. 그때도 시장을 봐 놓고 공황장애가 아주 심각하게 왔는데 사지가 다 돌아갈 정도로 심한 상태 어쩔 수 없이 119 타고 응급실에서 링거 맞고 돌아왔는데 남편이 어머니께 전화해서 오셔서 음식을 하고 계신게 아닌가 미치고 팔딱 뛸 노릇 할 수 없이 눕지도 못하고 바로 어머니 쉬시라 하고 언니랑 음식 준비를 다하고 있으니 동서가 왔다.
어머니 아무런 말 없이 왔니 하시는 것이다. 저녁을 차려 드리고 상 까지 다 준비한 상태에서 몸이 이상해서 안방으로 들어와 몰래 숨기려고 했는데 숨길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방을 뱀처럼 기어다니고 괴성을 지르고 난리가 난 상태가 되니 시어머니도 들어와서 보시더니 깜짝 놀랐다고 이렇게 사는줄 몰랐다고 하시며 우시는 것이다. 산 사람이 살아야지 제사가 무슨 소용이냐 그때서야 하시는 것이다.
둘째 식구들은 쇼파에 앉아 듣고만 있었다. 딸에게 언제부터 저랬냐며 묻는 것이다. 엄마가 병원에 갔는데 너무 비싸서 치료를 못 받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심각성을 알게 됐다.
남편이 이젠 제사를 합쳐서 일년에 한번 지내자고 하니 둘째놈 하는 소리가 난 싫은데 엄마랑 형이 하자고 하니 해야지 하는 것이다. 알았어 하면 되는데 토는 왜 다는지..
어떻게든 얼마가 들든 자기가 빚을 내서라도 도와준다고 하시는 것이다.
미친 짓을 하고 나와서 제사를 올리고 보내고 나서 정리를 하고 잤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매일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강도는 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