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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 묘죽의 시간

40대, 흔들리며 피어나다

by 라이언윤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이 시작되려는 걸까.

중동의 공포가 이곳까지 울려오는 듯하다.

서로를 향해 초음속 미사일을 겨누고,

그 역사 속의 한순간은 피와 눈물로 얼룩져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내게는 전쟁보다 가까운 조직 개편이다.


연말도 아닌데, 회사 안은 웅성웅성하다.

대대적인 인사 이동과 조직 재편이 예고되어 있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동안 숨어 있던

‘라인’들이 하나둘 드러날 참이다.


폼생폼사하게 살아왔지만,

사실은 나를 잃지 않으려는 자기애 하나로

버텨온 나로서는

이 불공평한 세계 앞에서 작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불혹이다.

예전 같으면 들끓었을 마음이,

이젠 그저 조용히 가라앉는다.


나도 모르게 조금은 성장했나 보다.


회사의 삶은 한 화분에서 계속 자라는 일이 아니다.

성장에 맞춰 화분이 바뀌고,

그 화분 속에서 다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 순간을 알아보는 것, 그게 지금의 나다.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묘죽은 뿌리를 먼저 낸다.”

누군가는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패댕이를 들어 대나무를 찍어버리지만,

누군가는 묵묵히 기다린다.

반드시 자라날 것을 믿으며,

조용히 뿌리를 다지는 그 시간.


그리고 어느 날,

대나무는 하루에 수십 센티씩 자라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다.


나 역시, 지금은 뿌리를 내려야 할 순간이다.

새로운 직함보다, 중심을 놓지 않는 나 자신이 먼저다.



씁쓸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복귀 후 회식 자리에서 생긴 에피소드인데


출장 다녀온 폴란드의 한 주재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매너도 좋고 여유도 넘쳐 인상

깊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의 행동이 이야기의 중심이었지만,

곧 사람들의 관심은 그의 출신으로 옮겨갔다.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취미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자산을 가졌는지.


그 여유는 돈이며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마치 루머가 아닌 스펙처럼

어디선가 테이블 위로 술술 흘러나와

술잔을 넘치게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의 ‘매너’가 아니라,

그가 가진 뿌리,

그 배경의 굵기와 깊이를 칭송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나보다 더 큰 화분에서 자라났다는 것,

그 화분의 크기 자체를

사람의 가치로 오해하고 있다는 걸.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이 작은 화분은,

내가 작아서 작은 것일까

아니면 작다고 여겨졌기에

내 뿌리마저 얕다고 판단된 걸까?


화분의 크기가 사람의 깊이를

정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고 믿지만,


이 조직과 이 사회는 여전히

“누가 더 넓고 비싼 화분에 심겼는가”를 본다.


숟가락 색깔론은 거들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화분의 크기만큼 색깔이 더 중요시된다.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나는,

문득 외롭고 고단하다.


하지만 대나무는 잊지 말자.

5년을 자라지 않아도,

그 뿌리는 조용히 땅속을 가르고 있으니까.


내가 금을 좋아하는 이유는 색상 결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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