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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Mar 22. 2020

개똥밭에 굴러도 내 나라가 최고

2018. 10. 27. 여섯째 날

 사망.


 원래 클럽 다녀온 다음 날은 온종일 시체처럼 침대에 널브러져들 있잖아요? 나이 서른셋에 이역만리에서 아빠랑 한 침대에 누워 오후 네 시까지 뻗어있었다는 게 살짝 다르긴 했지만요.


 툭툭.


"아빠, 일어나셨어요?"

"그래.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왜 무겁긴요. 오늘 아침 네시에 잤으니까 무겁죠."

"몇 시냐?"

"어디 보자.. 세 시네요. 뭐!!? 세 시야!?"


 늦여름 밤의 꿈과도 같았던 어제의 흥분을 뒤로한 채, 부스스한 몰골로 눈을 뜨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 원래의 계획은 이랬다. Union Square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을 구경한 후, Whole Food로 가서 스물한 살 때 즐겨 먹던 음식들을 가득 담아 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2층 명당자리에 나란히 앉아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는 것이 오전의 일정. 오후에는 The Ride Tour 버스에 탑승하여 관광객 기분을 만끽하고, Ground zero를 거쳐 The Oculus에 들렀다가, 핼러윈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식당에서 파스타와 와인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려면 어젯밤 10시에는 잤어야지! 전날 밤을 새웠는데 다음날 이 모든 게 가능할 거고 생각했냐! 자신을 스스로 다그쳐 봐도 뭐, 어쩔 수 없지. 아빠랑 그 시간까지 거기서 그러고 있을 줄 알았냐고.


지워지지 않은 어젯밤의 훈장


 뭣보다도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운 게 여행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나부터 좀 살고 봐야겠다. 지난 며칠간 일정표를 전면 수정하고 다음 목적지를 예약하느라 매일 아침 5시에 자서 8시 30분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예 밤을 새워 버렸으니 에너지 수치가 저기 창밖으로 보이는 맨홀 맨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뉴욕에 오니 책임감 때문인지 효심 파워인지 뭔지 신기하게도 잠이 안 온다고 유세를 떨었건만, 역시나 내 몸 어딘가에 달린 생명 유지 장치는 활발히 작동하면서 지금 당장 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한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부슬비까지 내리고 있어 포근한 호텔 침대를 박차고 나가는 것은 엄청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 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 아니던가? 게다가 여긴 뉴욕이니까, 무조건 나가야지. 나가서 벽에 붙은 포스터라도 구경해야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긴 했는데, 활동적인 행위를 하기에는 온몸이 곤죽 같아서 관광객 모드는 잠시 꺼두고 왕년의 뉴요커로 돌아가 생존 아이템을 구하며 남은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물론 아빠는 관광객이니까 제외. 비 오는 날에는 무조건 박물관을 가야 한다는 가이드 책의 꿀팁이 떠올라서 Metropoliotan Museum으로 등을 떠밀었다. 좋아. 일단 '아빠의 알찬 하루'는 해결했고, 그다음으로는 '추위 이슈'를 처리해야 했다. 작은 트렁크 세 개가 터져나갈 정도로 가을옷을 잔뜩 가져왔건만, 도착한 다음 날부터 뉴욕은 갑자기 겨울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8년 전 핼러윈 때는 가을 재킷을 입고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롱 패딩을 가져올걸. 어쩔 수 없지. Century21에서 보물찾기를 할 시간이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뉴욕은 지하철에 붙어있는 벽보들조차 영감을 준다.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Pentagram에서 만든 광고 이미지부터 Helvetica로 쓰인 안내문좀 봐.
The Oculus의 조형미


막 찍어도 작품 같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대형 광고판 덕분일까?


 아웃렛을 가려면 무조건 맨해튼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도심에도 의외로 괜찮은 곳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Union Square의 Nordstrom Rack과 DSW, World Trade Center 근처에 있는 Century 21이 대표적이다. 당시 가난한 유학생이던 나는 뉴욕에서 산소를 소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비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주로 아웃렛에서 아이쇼핑을 하며 (가끔 80~90% 할인하는 제품을 득템 하기도 하며) 본능을 달래곤 했다.


흥분되는 광경


 아니나 다를까, 매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21살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피곤이 싹 가시고 온몸의 세포가 팽창하여 에너지를 내뿜는 기적을 경험하며 이층 저층을 신나게 쏘다녔다. 여우 털 조끼를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리다가 불굴의 의지로 간신히 내려놓고, 바로 내일부터 아빠와 나의 목에 두르면 딱 맞을 검은색 캐시미어 목도리 2개만 집어 든 채 계산대로 향했다. 기둥 여기저기에 회원 가입만 하면 즉시 할인을 해 준다는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길래 캐셔에게 방법을 물어봤더니, 뉴욕 시민만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단다.


"뉴욕에 사니?"

"아니, 여행 왔어. 9년 전에는 뉴욕에서 살았지. 여기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거든."

"오, 좋았겠다. 뉴욕을 왜 떠났어? 나는 뉴욕에 사는 게 꿈인데. 너무 멋진 도시라고 생각하지 않니?"

"뉴욕이 대단한 도시인 건 맞아. 특히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이 어딨겠어? 하지만 이렇게 가끔 관광객으로 와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 굳이 비싼 렌트비 내면서 살 필요 있니? 이렇게 멤버십 할인도 안 해 주는데. 나 말이야, 한국에서는 아주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어.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기 때문이지. 가족들도 모두 한국에 있고."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도 가끔은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 집(Home)이 최고긴 하지."


 순간 울컥해서 TMI를 쏟아내 버렸다. 살면서 또 어떻게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짧게 타지 생활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역시 주민 등록 번호 있는 데서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조국이 최고라는 건 떠나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내가 발 딛고 선 자리를 좋게 만들어야지,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커다란 쇼핑몰 문을 닫고 나오자 찬바람이 겨드랑이 속까지 파고든다. 쇼핑백에 곱게 담긴 목도리를 냉큼 꺼내 목에 두르니 한결 낫다. 역시 캐시미어가 최고야. 아빠한테도 빨리 갖다 드려야지. 그러고 보니 커플 목도리다. 같이 여행 오니까 별걸 다 해본다. 뉴욕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 평생 아빠랑 커플 목도리를 하고 시내를 돌아다닐 일은 없었겠지.


 하루를 늦게 시작한 탓에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이미 돌아와 계실 아빠와 방에서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만한 음식을 사 가기 위해 한인타운을 들렀다. 골목 먼발치에 서서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을 빠르게 스캔하니 빨간 지붕 그림이 귀엽게 그려진 새까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우리 집'이다. '우리 집'은 한국 음식을 주로 진열해 놓은 뷔페식당이다. 김밥, 전, 잡채, 불고기, 탕수육, 떡볶이, 계란말이 등 엄마의 밥상에서 보던 반찬들이 온기를 뿜으며 나란히 진열된 데다가 값도 저렴해서 학창 시절에 자주 갔었다. 그래, 오늘은 너다!


유혹의 붉은 지붕과 진수성찬, 엄마의 밥상, 예식장 뭐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


 얇은 스티로폼 그릇에 최대한 많은 음식을 꽉꽉 눌러 담아서 아빠가 계신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음식을 아빠도 반기는 눈치다. 사이좋게 도시락을 나눠 먹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길게만 느껴졌던 뉴욕 여행도 벌써 3분의 1이 지나버렸다.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면서 즐겼던 럭셔리한 맨해튼 미드타운 라이프는 여기까지. 내일은 캐나다로 간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라는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하러. 


 나도 처음 가는 곳이라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준비도 많이 못 했다. 한국에서 골병들기 직전까지 여행 계획을 짜는 나를 보며, 남편은 미국에서도 인터넷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특히 나이아가라 폭포야말로 가서 그때그때 검색하며 다녀도 충분할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말에 설득당해서 진짜로 아무것도 안 했더니, 지금 걱정 더미에 눌려 죽을 것 같다.


 호텔 로비로 가서 이메일로 미리 요청한 바와 같이 12일 동안 짐을 맡아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여행책에 고작 몇 페이지로 정리된 나이아가라 부분을 수십 번 봤는데도 왠지 모를 불안감에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천재+월남전 용사인 아빠와 함께하니까. 결국, 중요한 순간에 믿고 의지하게 되는 단 한 사람. 바로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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