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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May 03. 2020

What A Wonderful World

2018. 10. 30. 아홉째 날

"미안하다. 도저히 못 가겠네."

"안 돼요! 여기 진짜 어렵게 예약한 거야! 뉴욕에 와서 재즈바는 한 번 들렀다 가야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못 움직이겠어. 오늘 밤에 쉬지 않으면 병날 것 같다."


 (늘 그렇듯 오늘도 역시) 빡센 일정이긴 했다. '첼시 마켓 - 하이라인 파크 - 첼시 갤러리 투어 - 탑 오브 더 락 - 빌리지 뱅가드'. 뭐 하나 뺄 것이 없을 만큼 볼거리와 먹을거리, 들을 거리로 가득한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첼시 마켓에서 랍스터에 홀려 맥주 한잔만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맥주 한 잔 다오."

"안 돼요. 말씀드렸잖아요. 요 며칠간 아빠의 행동 패턴을 관찰한 결과, 아빠는 술이랑 안 맞아. 술만 먹으면 화장실도 자주 가고 컨디션도 안 좋아지시더라고."

"딱 한 잔은 괜찮다. 딱, 한 잔."


외면할 수 없는 아빠의 이 표정을 보시라


 맥주 한 잔을 열망하는 아빠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도 못 본 척할 수 없는 효녀 딸로 잠시 빙의한 것이 문제였다. 혹시나는 역시나지 뭐. 첼시 갤러리 투어 중 아빠는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셨지만 2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로 가득한 골목 한복판에서 공용 화장실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뉴욕 여행 최대의 '화장실 찾아 삼만리 대첩'을 치르고 말았다. 그 후, 아빠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고 '탑 오브 더 락' 전망대에서 끝내 아빠는 주저앉았다.


"아빠, 여기서 우리 사진 찍어요."

"아까 많이 찍었으니 이제 너 혼자 찍어라. 나는 안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마."

"엥!? 벌써? 여기 멋있지 않아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랑 뉴욕 시내 야경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베스트 스팟인데!"

"멋있는데 다리가 좀 아프네. 날도 춥고. 안에 앉아서 네 사진 찍어주마."


 컨디션은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맨해튼의 노을부터 야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대에 아빠는 실내에만 줄곧 앉아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을부터 밤까지 아름다웠던 뉴욕, 뉴욕


 눈부신 도시의 불빛에 질릴 때쯤, 자그마치 1935년에 문을 연 정통 재즈바인 '빌리지 뱅가드'로 가서 Jon Batiste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와인에 취할 예정이었다. 정통 재즈바는 나도 처음이었다. 솔직히 이 타이밍에서 유식하게 몇 마디 떠들고 싶지만 아쉽게도 재즈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쉬운 줄 알고 신청했지만, 미국의 역사와 더불어 뮤지션들의 이름과 재즈 용어를 외우느라 진땀 뺐던) '재즈와 미국문화'라는 교양 수업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고, 우연히 들어간 이태원의 '올 댓 재즈'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의 할아버지가 리듬에 취해 드럼을 두드리는 것을 보며 잠시 고개를 끄떡거린 것이 내 인생 재즈 경험의 전부다. 아빠는 더더욱 없으셨겠지. '수요 가요무대'와 '눈물 젖은 두만강'이 전부인 아빠에게 재즈의 문을 열어드리고 싶었다.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예술이 뭐 별건가. 뭔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감동하게 되는 그런 게 예술이지. 두둠둥 하며 명치를 때리는 콘트라베이스의 울림과 피아노 선율을 타고 흐르는 분위기에 함께 휩쓸리고 싶었건만, 이게 웬 청천벽력같은 소리야. 못 가시겠다니. 지금껏 단 한 번도 '못 하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 터라 최초로 듣는 아빠의 포기 선언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쉬세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너무 아쉽다."

"그래. 나도 고민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좀 쉬어야 다음날부터 또 잘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네."

"알겠어요. 아빠가 오죽하면 못 가겠다고 하셨겠어요. 오늘 밤엔 집에서 맛있는 거 먹어요, 우리."

"아니다. 너라도 혼자 다녀와라."

"나 혼자? 아빠는 뭐 하시게요?"

"좀 자련다. 난 괜찮으니 너라도 꼭 보고 오려무나."

"아빠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요."


 아쉽지만 아빠를 숙소에 모셔다드리고 나 홀로 밤길을 나섰다. 꽤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지인이 인생 재즈바라며 적극적으로 추천했던지라 그 실체가 적잖이 궁금했다. 오늘의 아티스트는 Jon Batiste와 친구들. 유튜브에서 미리 찾아본 그의 무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감미롭게 노래하는, 귀여운 브로콜리 머리를 한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였다.


 빨간 문 위에 빨간 천막, 그 위에 달린 더 빨간 불빛의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빌리지 뱅가드' 입구에 도착하니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세계적인 뮤지션의 공연을 퇴근 후 집 앞 마실 나가듯이 보러 갈 수 있는 것도 뉴욕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검표원에게 미리 출력해 놓은 티켓을 들어 보이자 계단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리 크지 않은 공연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혼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인파를 헤치고 맨 앞자리로 안내받아 앉았다는 것. 둘째, 앞에 앉은 혼술족 언니(라기엔 50대 정도로 보이긴 했다만)와 캐나다에서 개 썰매 타는 재미에 관해 논할 수 있었다는 것. 아빠를 두고 온 덕분에(?)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를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다.


 공연 시간이 되자 갑자기 모든 불이 꺼지더니, 핀 조명과 함께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각자의 어깨에 금관 악기를 들쳐 메거나 양손에 들고 위아래로 신명 나게 흔들면서 연주하며 무대로 향하는 모습이 흡사 한국의 남사당패 무리 같아 보였다. (이 등장 음악이 정말 좋았었어서, 또 듣고 싶어서 아무리 찾으려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다가 문득 앨범도, 악보도 없는 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의 위대함을 방증하는 것 중 하나가 '즉흥 연주' 아니던가.)


 당연한 말이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모든 촬영 행위는 일절 금지되기 때문에 아쉽게도 밴드의 사진이나 영상은 단 한 장도, 1초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지. 기록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치 카메라가 없던 시절,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유럽 여행을 떠나온 관광객처럼. 그래서일까? 연주자들이 빚어내던 그 환상적인 순간들이 더 선연하게 떠오른다. Jon의 까만 눈동자, 웃음기 가득한 얼굴과 건반 위를 흐르는 손가락, 실내를 가득 메우는 나팔 소리, 연주자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관객과 주고받던 농담들, 축복들, 환호성, 냄새까지도.. 문득 가수 '싸이'가 연말 콘서트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러분, 제 공연 중에는 모든 촬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 주세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성능 카메라가 전화기에 장착되어 출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익숙지 않은 장면을 맞닥뜨리게 되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촬영하는 작은 모니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목적은 다양할 것이다.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두고두고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때로는 신고나 고발을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데.


 공연 막바지쯤 되자 Jon이 히트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멜론에서도 수많은 '좋아요' 수를 자랑하는 바로 그 곡이다. 곡명은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의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익숙한 명곡이다. 예상컨대 이 곡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손을 대기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관객의 귀에 루이 암스트롱을 뛰어넘는 신선한 충격을 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Jon은 그 어려운 것을 해낸 듯싶다. 나를 포함한 청중 모두가 그의 연주가 끝난 후 몇 초간 정적을 유지하며 손뼉 치는 것도 잊은 채 음악이 주는 감동의 여운을 음미했던 것을 보면.


 자정이 될 무렵, Jon과 친구들이 등장했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왁자지껄하게 사라지자 홀 전체가 다시 밝아졌다. 텅 빈 무대를 보고 있자니 지나간 90분이 마치 존재한 적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요상한 기계 장치를 타고 잠시 '무지개 너머에 있는 Jon의 재즈 왕국' 같은 곳으로 잠시 소환되었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만큼 좋았다.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을 법한 일로 느껴질 만큼.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이 핼러윈이라 그런지 길거리 분위기가 험해 보이지 않아서 지하철을 탔다. 바로 들어가려다가, 이대로 자기엔 뭔가 아쉬워서 RITE AID에 들러 '블루 문'을 한 병 샀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며 방금 사 온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니 말 그대로 'What a Wonderful World'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퇴근 후 밥이나 직접 차려 먹으면 그나마 성공한 날이었고, 밖에서 사 온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우면서 유튜브나 보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오늘은 그저 피곤했고 다가올 내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이 주말만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맞이한 주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일에 받은 스트레스와 피로를 푼다는 핑계로 침대에 드러누워서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며 온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하루에 38보를 걸은 날도 있다.) 그냥 그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려서 노인이 될 날만 기다렸다. 그때가 되면 나무라는 상사도 사라지고, 집도 샀을 테고, 자유도 얻었을 것이라 믿으며. 


 게으르고 무기력하기로는 국가대표급인데 국경 밖으로 여행만 떠나면 갑자기 부지런쟁이가 된다. 1년 중 345일가량을 천천히 소진하면서 살다가 외국으로 나온 20일동안 허겁지겁 삶의 재미와 영감을 수혈하는 격이다. 왜인지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날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현재를 늘 불만족스럽게 여기며 지내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일상을 여행처럼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고 지낼 뿐, 생명은 유한하고 시간은 계속 흐르니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과 인생이 별반 다르지 않다. 천지 만물 중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행복은 누가 손에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감상을 나누고 싶건만, 옆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빠를 보니 너무 속상하다. 이제부터 아빠 술병 압수. 기억하자! 아빠는 70세라는걸!


https://www.youtube.com/watch?v=nHuI_SnqlWE

<Jon Batiste Performs "What A Wonderfu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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