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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아빠의 구두 발자국 소리

by 김틈

(24년의 '엄혹한' 겨울 새벽 출근길에 찍은 내 구두발자국)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 발자국 소복소복
도련님 따라서 새벽길 갔나
길손 드문 산길에 구두 발자국
겨--울-해 다-가도록 혼자 남았네."


"구두 발자국"

작사 : 김영일(金英一, 1914~1984), 작곡 : 나운영(羅運榮, 1922~1994)


할아버지 할머니도 불렀던 노래, 손자 손녀도 부르는 노래


무려 1953년에 나온 노래야. 할머니 할아버지도 어린이였던 시절이네? 교과서에 실렸다고 하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부르고 그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손자 손녀와 함께 부르는 노래구나.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엔 이 노래를 들으면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도 들어. 겨울 새벽을 노래하니까.

같은 제목으로 나온 김홍모 작가의 그림책에는 겨울 첫눈이 소복이 내린 하얀 세상에 첫 발을 딛고 싶어 한 동심을 잘 담아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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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발자국이라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하고 재미있어.


발자국은 그 발자국의 주인이 거기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해. 그래서 범죄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잘 수집하는 게 수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


정글을 탐험하는 탐험가들은 어떤 동물의 발자국인지를 잘 알아야 아마도 봉변당하는 무서운 일을 피하겠지?


고고학자들은 공룡이나 고대의 발자국을 발견하면 무척이나 흥미로울 거야. 발자국은 많은 걸 담고 있거든.


발자국에 담긴 것들


그런데 발자국이라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참 특별하고 재미있어. 고대의 인간들이 동굴에 처음 기록한 그림도 발자국, 손자국이 많아. 아마도... '내가 여기 살았다.'이런 이야기겠지? 어쩌면 동물의 발자국도 여기는 내 영역이야. 내가 살아있어. 하고 말하는 건지도 몰라. 결국 '발자국'은 살아있음, 삶이라는 거네?


그래서 아빠는 요즘도 발자국이 보이면 이 사람은 어디로 살기 위해 걸어가고 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해. 바닷가에서도 발자국을 보면 '아... 둘이 정답게 나란히 걸었구나.', '아... 개구쟁이들이 마구 뛰어놀며 걸었구나.' 알 수 있었지.


그런데 발자국엔 이런 발자국 주인의 삶만 담기진 않아. 특별한 게 담기는데... 뭘까? 그래 아빤 라디오 피디잖아. 발자국엔 소리가 담겨, 우리 집 멍멍이는 톡톡톡톡 귀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뭘 하는지 알 수 있지?. 또 야옹이는 소리도 안 들리고 부드럽게 다니지만 스크레쳐나 소파를 긁어대면 아 움직이는구나... 하고 알게 되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야. 발자국은 '발자국 소리'를 갖게 되니까.


발자국 소리


어릴 때 할아버지의 구두는 유난히 소리가 컸어. 힘든 세상을 힘차게 이겨내며 살아가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의 구두가 영 쿠션이 부드럽지 않아서인지는 모르지만 따각 따각 하고 발소리가 들리면 아빠다! 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때론 공부하며 꾸벅 졸다가 헉! 하고 놀라기도 했지.


하지만 무엇보다, 새벽에 (아빤 어릴 때부터 아침형 인간이었나 봐?) 할아버지가 일찍 일을 나가실 때 들리는 구두소리가 참 정겨웠어. 그 소리에서 어린 나나 가족이 먹는 밥이 나왔고, 웃음소리가 시작되기도 하니까... 어쩌면 음악 시작할 때의 첫 드럼소리 같기도 하고, 국악 연주에서 처음 치는 '박'이라는 악기의 경쾌한 소리 같기도 해.


지금도 너희들이 우당탕당 걸어갈 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왠지 생명력 넘치는 느낌이라 좋단다. 물론 아파트나 아래층이 있는 집에선 그게 싸움과 미움의 원인이 되어버렸지만. 우리 집처럼 1층인 곳에서는 그래도 맘껏 너희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 그리고 그 소리가 너희는 자고 있는 이른 아침이나 새벽에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걸어갈 때의 소리와 마음속에서 어우러져서 기분 좋은 북소리가 되기도 해.


발자국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만 같은

막막한 날 만나는 반가운 등대 같구나.

가끔 내 발자국은 너희들에게 어떤 소리로

어떤 삶으로 남을까?

첫눈 온 아침의 하얀 마당처럼 설레고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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