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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Oct 07. 2021

이유 있는 낮잠 예찬

TESTIST PROJECT

 낮잠의 기억은 풍부하고 달콤하며 현재진행형이다. 이전에 '커피'에 대한 예찬을 글로 쓴 적이 있지만,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진 커피라고 할지라도 감히 낮잠에 비할게 아니다. 

 내 일상에 낮잠은 필수적이다. 낮잠을 잔 날과 안 잔 날의 업무 효율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아예 낮잠을 안 자는 경우를 극도로 줄여버렸다. 주말조차 낮잠을 꼭 자려고 노력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자연스레 식곤증이 찾아온다. 바로 이 때다. 이때를 오히려 인간의 강인한 의지력으로 참아 넘기면 저녁식사 시간까지 머리의 무거움과 띵함이 지속된다. 하지만 10분가량의 낮잠을 자고 나면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함이 찾아온다. 업무 효율은 당연히 올라간다. 


 나는 주로 의자에 앉은 채로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서 잔다. 엎드려서 잘 때도 있지만 요즘에는 앉아서 자는 걸 선호한다. 이렇게 자는 낮잠은 누워서 잘 때보다 좀 더 좋은 점이 있다. 알람을 안 맞춰도 알아서 일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밤에 잘 때도 몸을 뒤척인다. 하지만 밤에는 침대에서 자기 때문에 몸을 뒤척이는 정도로 깨지 않는다. 그러나 앉아서 자거나 엎드려서 자는 낮잠은 자세를 조금 바꾸면 자리와 환경의 특성상 깰 수밖에 없다. 자동 알람인 셈이다. 내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보통 이렇게 뒤척이는 텀이 10분 내외다. 딱 적절한 시간만 자고 깰 수 있다. 

 새 부서에 합류했을 때, 웬만한 자세나 태도를 부서에 맞췄다. 하지만 마지노선이 바로 낮잠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첫날부터 낮잠을 잤다. 나의 낮잠은 길지도 않고 선을 넘지도 않는다. 하루 10분여를 할애할 뿐인 낮잠에 부서가 눈치 줄 것도 없다. 이후 나의 태도는 오히려 부서의 어떤 관습에 포함되게 됐다. 부서장 또한 낮잠의 장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동료들에게 낮잠을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낮잠의 기억은 회사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시절 기숙사에서의 낮잠은 지금보다 더 달콤하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물론 이 시기의 낮잠은 알람을 꼭 맞춰야 한다. 침대에서의 낮잠은 깨기 힘들다. 10~20분 정도로 알람을 설정해 놓고 낮 시간에 머리를 베개에 대면 기숙사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살랑이는 바람이 짧은 낮잠 속 꿈까지 선명히 전해진다. 10여 년 전의 대학생활이지만 기숙사에서 낮잠을 찾던 때의 기분과 감각은 잊히지 않는다. 때로는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옆방 친구들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가 자는 걸 보고 다시 조용히 닫고 나가던 소리까지도 생각난다. 

 낮잠의 효과는 잘 알았기 때문에 군 시절에도 나는 오침 예찬론자였다. 오침 후 훈련이나 작업 효율이 늘어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소대장의 권한에서 쉽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었다. 


 한국은 근면의 나라다. 이게 내가 의도적으로 정한 게 아니다. OECD 등의 통계에서 노동시간 등을 보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사람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이 부지런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수면 부족은 현대인 대부분이 앓고 있는 만성 질환이지만 근면하기까지 한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날카롭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이는 '커피'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의 커피 소비량이 많은 점과도 궤를 같이 한다. 어쨌든 한국인들은 잠이 부족하다.

 문제는 한국인들은 '남의 모습'에 관심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그러니깐 한국인들은 '근면해야 하는 의무'와 함께 '근면하게 보일 것'의 의무를 함께 가지고 있다.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늘어지면 제 자신부터가 '나는 너무 게으른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면서 '남들이 나를 보면 게으르게 생각하겠지?'라는 질문을 함께 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활동을 하고 있을 시간일 낮 시간에 그들 사이에서 낮잠을 자는 건 대단한 도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낮잠은 게으름이 표출된 행위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밑그림이다,라고 나는 믿고 있다. 굳이 시에스타 같은 외국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한국조차 과거 농경사회에는 낮잠이 당연했던 시대가 있었다. 이때 낮잠시간이 존재했던 이유는 낮잠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기보다도, 오히려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날씨 특성상 그 시간에 땀 흘리면서 논밭을 가는 건 쓰러지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갈아 넣어서 사회의 발전량의 총량 수치를 압도적으로 높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니까,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하루 열여섯 시간에서 스무 시간씩 미싱을 돌리던 시대가 지금은 절대 아니라는 거고, 절대 아니어야 한다는 거다. 시간적 여유를 통해 삶의 질을 찾은 만큼, 사회의 효율과 합리를 위해선 주어진 노동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게 분명 중요하다. 나는 이를 위해 낮잠이라는 양념 한 방울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당신의 사회활동 현장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하루 10~20분 정도의 낮잠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자. 그리고 깨어난 후 기지개를 켜고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오후의 일상을 시작해 보자. 분명 상쾌하고 맑은 정신을 느낄 수 있으리라. 

 헬스나 필라테스로 당신의 근육과 뼈를 지켜주는 것처럼, 짧은 낮잠으로 뇌를 지켜주도록 해보자. 컴퓨터도 오래 켜 놓으면 성능이 떨어진다. 하루 10분 정도 뇌의 절전모드를 통해, 그 이후 시간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면 충분히 해봄직하지 않는가. 낮잠을 사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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