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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

두 번째 퇴사

by 지안

귀국 후에도 여전히 한국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외국계 공고가 뜨기를 기다리다가 피앤지에 지원했다. 면접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당시의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눈은 독기와 총기로 반짝였다. 그때의 난 아무것도 겁날 게 없었다.


두 달간의 인턴십을 마친 후, 서너 명의 임원 앞에서 최종 PT를 했다. 당시 한국 지사장이었던 인도인 한 분이 발표 내용 일부를 지적했는데, ‘당신이 한국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랬나 싶다. 어찌 되었든 나름의 논리(?)와 두둑한 배짱을 좋게 봐주셨던 건지 나는 최종 합격했다. 그리고 당시 회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았던 팀에 배정되어 세일즈 직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강성 고객들에게 혹독히 단련된 나는 베테랑 바이어의 으름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차게 협상을 했다. 실수를 해 혼나는 날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경험했던 일들에 비하면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의연히 견뎌냈다.


내가 담당했던 브랜드의 매출은 목표 대비 200% 이상 성장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회사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2년 차에는 부서별로 단 한 명만 뽑히는 브로드닝 어사인먼트를 맡아 마케팅 팀으로 배정받았다.


회사의 기대가 큰 만큼 책임은 막중했고 일은 살인적으로 많았다. 우리 쪽과 고객사 모두 상무급 이상이 참석하는 미팅에 마케팅 대표로 들어갔다. 꼬박 1년을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회사를 벗어나 차를 몰고 텅 빈 도로에 들어서면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음악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시속 160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집 앞 편의점이었다. 퀭한 눈으로 매운 컵라면, 닭꼬치, 핫바 따위를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딱히 다른 데에 돈을 쓸 시간도 없던 때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플렉스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더니 몸이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루는 감기몸살이 심해 조퇴를 하고 운전해 집에 가던 길이었다. 약기운에 취해 있었던 나는 순간 깜빡 졸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200미터 정도를 이동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 복잡한 역삼 사거리에서 아무런 사고도 나지 않고 순간이동만 한 것이었다. 정말이지 기적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경험이었고, 그 뒤로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때 내 인생의 웬만한 운은 다 끌어다 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일주일 가까이 앓아누워 링거를 맞았다. 병가가 끝나고 복귀한 첫날 아침 원온원 미팅에서, 당시 나의 매니저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아프기 전에 100만큼 일했다고 치면 지금은 몇까지 일하실 수 있어요? 30? 50?”


순간 정적이 흘렀다. 와, 이렇게 정중한 말투로 이렇게 비인간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구나. 나는 놀라움을 감추고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70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70’ 정도의 일을 하다가 다시 ‘100’만큼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난 내가 원하던 팀으로 지원해 세일즈로 복귀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또래 친구들에 비해 훨씬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으며, 자취를 하면서 외제차까지 끌고 있었다. 거기에 1년에 두어 번 해외 연수나 출장을 다니며 하루 수십만 원짜리 호텔에서 묵고 비즈니스석에 타는 호사도 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회삿돈으로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호텔에서 묵을수록 내가 회사에 고용된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만 더 선명히 떠올랐다.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의 매출이 뛰면 기쁘기도 했지만, 결국 회사 좋은 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회사를 벗어나 ‘내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나 혼자만 돌연변이인 것 같아 유난히 마음이 괴롭던 날, 입사 때부터 날 지도해 주셨던 시니어 매니저 영석 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만 왜 이렇게 유별나게 괴로운 걸까요? 제가 그냥 참을성이 없는 거 아닐까요? 회사생활이 마냥 좋고 재밌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다들 참고 다니는데, 제가 배부른 소리 하는 건 아닐까요?”


말없이 듣고 계시던 영석 님은 말씀하셨다.


“지안, 3년 동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면 그건 참을성이 없는 게 아냐. 그게 진짜 너인 거지.”


눈물이 핑 돌았다.


입사한 지 정확히 만 3년을 채우던 날, 나는 두 번째 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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