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룡의 등장
백수가 되면 적어도 6개월은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실컷 해보면서 여유롭게 보낼 요량이었다. 구글을 퇴사한 뒤 맞은 어느 봄날,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새로 사두었던 노트의 첫 페이지를 펼쳐 백수가 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목록은 아래와 같았다.
1. 집에서 아침 햇살 받으며 요가하기
2. 읽고 싶었던 책 마음껏 읽기
3. 동네 카페와 소품샵 탐방하기
그야말로 소소하고 귀엽기 짝이 없는 일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토록 사소하고 대단할 것 없는 이 일들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을 거란 걸.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층간소음이었다.
우리의 첫 신혼집으로 얻었던 전셋집은 지어진 지 30년이 훌쩍 넘은 구축 아파트에 18평 남짓 되는 작은 평수로, 층간소음에 매우 취약했다. 원래도 시끄러운 윗집 때문에 잠을 설치곤 했는데, 퇴사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정은 훨씬 더 심각해졌다. 온종일 뛰어대는 윗집 어린이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니, 꺅꺅 악을 질러대는 소리를 들으면 윗집에는 어린이가 아니라 익룡이 사는 게 아닐까 싶었다.
경비실에 몇 차례 도움을 청해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다음으로는 애절한 바람을 화려한 미사여구로 버무려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간 손 편지를 현관문에 끼워두고 와보기도 했다.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이대로는 정말 못살겠다 싶어 하루는 큰 마음을 먹고 동네에서 유명한 빵집에 가 빵을 잔뜩 사들고 올라갔다. 다행히도 아이 엄마는 문을 열어주었고, 내가 내민 빵 봉투를 망설임 없이 냉큼 받아 들었다. 그러더니 안쪽으로 들어와 직접 보라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는 마치 교무실에 불려 간 학생처럼 현관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소심하게 집 안을 쓱 훑어보았다. 아이 엄마는 매트를 다 깔아놓았다며 의기양양하게 거실을 가리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매트라기보다는 방석에 가까운 것들이 군데군데 허술하게 놓여있는 수준이었다. 거실에 대자로 누운 아이 할머니는 한쪽 발을 까딱이며 나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애는 잠깐잠깐씩이나 뛰지 그렇게 하루 종일 뛰진 않아요. 소리가 꼭 윗집에서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던데 대각선 윗집이나 옆집 소리 아니에요?”
“천장 바로 위에서 들려서요. 그리고 옆 집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만 사시거든요.”
나는 최대한 공손하지만 분명한 어투로 대답했다.
제 이야기를 하는 걸 알았는지 아이는 어느새 자기 엄마 뒤에 바짝 숨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아줌마 왜 왔어? 가라 그래.”
‘아오 너 때문에 왔다’하며 머리를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 들었지만, 최대한 인자하게 웃어 보이며 꾸벅 인사하고 물러섰다.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층간소음 문제에 있어 대개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눈치를 본다. 괜히 윗집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더 보복을 당할까 봐서다. 아랫집은 거꾸로 매달려 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실상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나는 층간소음 피해자들의 분노와 한이 서린 글들을 검색해 보다 ‘윗집에 복수하는 방법’으로 유명한 우퍼스피커 설치까지 고민하기에 이르렀지만, 차마 교양인이 할 짓은 못 되는 것 같아 결제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이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나의 남편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말 그대로 비둘기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 둘 중에서 제삼자를 대상으로 클레임을 제기하거나 맞서 싸우는 역할은 늘 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쌈닭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던 나는 층간소음 소동이 벌어지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머리 끝가지 차올랐다.
편지를 윗집 현관문에 꽂아두고 오겠다고 했던 날, 남편은 늦은 시간이라 실례가 될 수 있으니 다음 날 아침에 올라가는 게 어떻겠냐고 해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층간소음으로 고생하고 계시던 시부모님이 ‘너희 집은 괜찮니?’라고 물으셨을 때, 행여나 걱정을 끼쳐드릴까 ‘네 저희는 문제없어요’라고 대답하는 효심을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그나마도 남아있던 애정까지 짜게 식어버렸다.
층간소음에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자, 하루 종일 온 감각이 천장에 집중됐다. 흔히들 이걸 ‘귀가 트인다’고 표현하던데, 내 귀는 트이다 못해 뚫려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기대에 부풀어 적어두었던 ‘집에서 평화롭게 요가하기’나 ‘읽고 싶었던 책 마음껏 읽기’ 따위를 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카페나 소품샵 탐방에 나설 기운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세 달을 넘게 버티다 '이러다가 돌아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결국 남편을 혼자 버려두고 친정집으로 피난을 갔다. 본격적인 불행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