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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테이스팅파티 2

제2화. 파티가 시작되었다.

by 마이크 타이프

(낙서카페/와인바를 운영하는 사람의 일상을 담은 드로잉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와인 시음회가 시작되는 오후 7시가 조금 넘자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출입문이 열렸다. 오픈채팅을 통해 시음회 참석 신청한 손님이었다. 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안내했다. 손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네에 살아서 언젠가 한번 와보고 싶었다는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7시 5분 정도가 되니 대부분의 신청자분들이 모였다.

나는 안내 멘트를 시작했다. 15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라 마이크도 필요 없다. (몇 년후에는 150평 가게로 업그레이드하리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기 앞에 치즈와 스낵, 과일 안주 있으니 우선 개인 접시에 덜어서 맛보시고요, 곧 시음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손님들은 약간의 어색함을 담은 표정으로 음식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치즈를 접시에 담았다.


이번에 준비한 치즈 종류는 6가지. 고다, 체다, 레드 치즈, 월넛 가미 치즈, 과일치즈, 화이트 고다 치즈. 특이한 맛의 치즈보다는 무난하고 대중적인 맛을 지닌 치즈들만으로 준비했다. 경험상 대부분의 손님들은 강한 풍미의 치즈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2명이나 4명 짝을 지어 온 손님들도 있었고 혼자 온 손님도 몇 분 계셔서 자리 배치에 좀 신경을 썼다. 처음 보는데 마주 보면 좀 어색할 것 같아 나란히 앉아 함께 앞을 보며 시음할 수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다행히 처음 대면한 손님들은 서로 금방 친해져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본격 시음회를 시작한다. 순서는 대강 이렇다. 6종의 와인을 두 개씩 짝을 지어 맛을 비교한다. 피노누아 품종 와인 2개, 그다음엔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 2개, 그다음엔 그르나슈 품종과 메를로 품종. 각각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후 테이스팅하면서 미리 나누어준 테이스팅 노트에 이런저런 시음 후기를 적어본다.


자유로운 시음이 끝난 후 내가 와인 두 병을 각 테이블 앞에 가져가면 손님들이 좀 더 마음에 드는 와인에 스티커를 붙인다. 일종의 다수결 투표. 이렇게 3번의 투표를 마치면 3병의 위너가 나오고, 그 와인들을 메뉴에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각 와인에 대한 설명은 아주 짧게 끝냈다. 와인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닌데 설명이 길면 잔소리가 될 뿐이다. 대신 약간은 흥미로울 질문을 던져본다. 이를테면, 와인 한 병에 포도알이 몇 개가 들어갈까요? 보통 700알에서 800알 정도(약 1킬로그램) 들어간다는 설명에 손님들이 고개를 끄덕여주며 웃는다. 이런 피드백, 화자에겐 큰 힘이요, 즐거움이다.


시음과 투표가 모두 끝나고 손님들은 남은 와인과 식을 나누며 담소를 이어나갔다. 나는 이제야 한숨 돌린다. 별 것 아닌 행사인데 그게 또 별 게 아닌 게 아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즐거운 시공이 만들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번 행사에 대한 몇 가지 피드백을 정리해 본다.

1. 손님들은 테이스팅 노트에 꼼꼼하게 시음 후기를 적지 않는다. 한두 모금 마시고 직관과 직감에 따라 더 맛있는 와인을 선택한다.


2. 와인병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하는 방식이 꽤나 다이내믹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3. 품종과 숙성 과정 등 와인 자체에 대한 자세한 '정보'보다는 일반 상식, 와이너리 역사, 관련 에피소드 등에 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밤 10시가 넘자 떠나는 손님과 추가로 와인을 주문해 파티를 더 즐기는 손님으로 나뉘었다. 파티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일종의 에너지를 느낀다. 역시 가게엔 손님이 최고의 인테리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 이번 시음회가 수익엔 도움이 별반 되지 않는다. 치즈와 과일 안주에 기념품까지, 계산해 보면 오히려 손해다. 하지만 홍보 효과를 무시할 순 없다. 어설픈 마케팅업체에 매달 십 수만 원을 주면서 조작된 리뷰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무엇보다 이렇게 손님들의 활기와 에너지로 가게를 한번 채우고 나면, 뭐랄까 가게의 '기운'이 좋아진다고 할까, 분위기가 쇄신된다고 할까, 무엇보다 힘들고 고된 불경기 자영업자의 일상이 조금은 치유된다고 할까...


그래서 이번 시음회 입장료가 얼마냐고요? 단돈 40000원!

by hazy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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