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일수록 따스한 온기가 필요하다.
7월, 날씨가 너무나 덥다. 15평의 작은 와인바에 대형 스탠드 에어컨을 팡팡 틀어놓아도 희망온도 25도에 도달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오픈 30분 전에 에어컨을 켜고 설정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바람세기를 최대로 해 밤새 한증막처럼 뜨거워진 가게 안 공기를 식혀본다. 오픈 시각인 7시 될 즈음에야 가게 안 공기가 겨우 시원해진다. 설정온도와 바람의 세기를 재조정한다.
폭염이 어찌나 심한지 설정온도를 조금만 높여도 실내 공기는 금방 더워진다. 에어컨 방향에 따라 가게 안 대류의 경쟁도 끊이지 않는다. 찬 바람이 직접 닿으면 너무 추울까, 에어컨 토출구 날개를 천장으로 향하게 하면 찬바람은 아래로 내려오기도 전에 데워져 버리고, 토출구 날개를 아래로 향하면 윗공기는 여전히 덥다. 창가 한편에 세워진 스탠드 에어컨은 쉴 새 없이 찬바람을 토해내지만 냉기의 고른 분배가 쉽지 않다. 애초 인테리어 공사할 때 천장형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여러 번 후회했다.
가게 안이 시원해지길 기다렸다는 듯, 가게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두 팀의 손님들이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흔치 않은 일이다. 왠지 기분이 좋다.)
조금 먼저 온 남녀 커플 손님을 창가의 오른쪽 구석 소파 자리로 안내했다. 조금 늦게 온,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두 명의 남자 손님 팀은 소파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떨어진 왼편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위치인 걸 간파한 걸까, 자리 안내를 하기도 전에 서둘러 자리에 앉으며 어, 시원하다를 연신 외친다.
남녀 커플 손님은 더운 여름이라 시원한 와인을 마시고 싶다며 쇼비뇽 블랑 화이트 와인과 프렌치프라이를 시켰다. 왼편 테이블 손님들은 진하고 드라이한 레드와인이 좋다며 카베르네 쇼비뇽과 치즈 플래터를 시켰다. 다들 할 얘기가 많았는지 대화 삼매경에 빠진다. 와인을 먼저 대접하고 안주를 준비하는데 가게가 벌써 조금 소란해진다.
안주 서빙까지 마치고 한숨 돌리는데 소파 측 커플 손님이 슬그머니 손을 든다.
- 네, 뭐 필요하세요?
- 네, 저기 조금 더운 거 같아서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자가 말하자 여자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 아, 그래요. 에어컨 온도를 좀 낮춰 볼게요.
- 네, 감사합니다.
에어컨 온도를 더 낮추면 에어컨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남자 손님들이 좀 춥다고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에어컨 온도를 2도 낮추고 바람세기를 한 단계 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테이블에 앉은 남자 한 분이 어깨를 움츠리며 닭살이 돋았는지 팔을 비빈다.
내가 슬쩍 다가가 물었다.
- 좀 추우신가요?
남자가 네, 조금 춥네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나 역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 저쪽 손님들이 좀 덥다고 하셔서 설정온도를 좀 낮췄어요.
낮추면 이쪽이 춥고, 높이면 저쪽이 덥다. 공정한 분배는 언제나 어렵다. 사무실 냉기의 차이 때문에 분란이 자주 일어난다는 뉴스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가게가 좁아 나지막이 말했는데도 내 말이 들렸는지 커플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 아, 저흰 좀 괜찮아졌어요. 온도 좀 올리셔도 돼요.
그러자 테이블 측 손님들이 괜히 미안했는지 손사래를 친다.
- 아, 저희도 괜찮아요.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낫죠. 하하.
이들의 중간에서 나는 설정온도를 그대로 둬야 할지, 올려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으며 잠시 방황을 하고,
양쪽 손님들은 이 상황이 조금은 우스운지 피식피식 웃는다.
다행히 잊고 있던 에어컨 운전기능이 생각났다. 좌우스윙. 왜 이걸 몰랐지?
- 저, 그럼 바람 방향을 좌우스윙으로 왔다갔다 하게 하면 되겠네요.
손님들은 다 같이 웃으며, 네, 그럼 되겠네요.
나는 웃으며 퇴장했는데, 곧이어 테이블 측 손님 중 한 분이 넉살 좋게 남녀 커플에게 말을 건넨다.
화이트와인 맛 괜찮나요? 저흰 레드와인인데 나눠 드실래요?
커플의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럴까요?
이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웃으며 네 사람에게 여분의 잔을 건넸다.
넉살 좋은 남자가 레드와인병을 들고 커플에게 다가간다. 곧이어 커플의 남자가 일어나 화이트와인을 남자들에게 한잔씩. "감사합니다"라는 말들이 당구공의 쓰리 쿠션처럼 메아리친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냉장고에서 참외 하나를 꺼내 깎았다. 하나의 접시에 참외의 반을, 또 다른 접시에 나머지 반을 담는다. 저도 감사해서 서비스 드립니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번갈아 만족시킬 수는 있다. 좌우스윙의 지혜랄까.
누군가 나를 위해 참아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주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 자신의 것을 조금씩 내어주는 것. 이건... 이를테면 좌우스윙의 맛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