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자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가 나온다.
"우리 왔어요..."
잔뜩 힘이 빠진 엄마는 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눕는다. 뒤이어 들어오는 우리를 아빠가 바라봤다.
"다녀왔습니다..."
나의 잘못이 아님이라는 것을 너무 극명하게 알고 있는데도 눈치가 보여 꽃게걸음으로 아빠를 지나갔다. 사실 이제는 아빠가 나서줘야 하는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뭐라고 말이라도 했으면, 제대로 혼을 내서 이제 그만 이런 일에 연루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평소와 같았다. 혼자 한숨을 푹 쉬시며 그의 딸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익숙해서 누나가 엇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누나는 아빠의 그 진심 어린 눈을 피하고 방문을 세게 닫고 들어갔다.
"아휴... 내 인생아.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고달프냐. 근데 당신 빨리 들어왔네? 오늘 늦게 온다며?"
"이 지경인데 어떻게 늦게 와... 당신도 늦는다면서 어떻게 잘 데리러 갔네. 고생했어."
"하... 맞다 철수 오늘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놀기로 한 날인데 미안해서 어쩌냐. 엄마가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됐어. 무슨.. 나 방에 가서 쉴게"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카톡이 +99로 표시되어 있었다. 전화를 받고 정신없던 탓에 한 번도 못 봤는데 친구들은 재밌게 놀다가 이제 헤어졌나 보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단톡방을 모두 읽어도 +99는 없어지지 않았다. 뻔하다. 전체 채팅창으로 넘어가자 보이는 +99의 주인공. 우리 누나다.
하... 시발. 도저히 이젠 버티기 힘들 정도로 미쳐가는 누나 때문에 나 자신도 무너질까 봐 미쳐버릴까 봐 두려움이 문득 나를 덮쳐온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를 거의 뇌를 빼놓은 것처럼 탐닉한다. 이러면 아무 생각도 걱정도 들지 않는다. 마지막은 자위로 마무리. 현자타임을 올 시간도 주지 않고 베개에 내 머리를 담근다. 고요하고 나른하다. 나의 안정 루틴이라고 할까나. 잠에 들었다.
학교 마칠 6시가 되자 또다시 허벅지가 미친 듯 울린다. 어찌나 울리던 탓인지 허벅지를 탄 진동이 나를, 그리고 내가 밟고 있는 이 땅과 학교 전체를 울려버릴 정도의 기세로 울렸다. 손을 아래로 내려 핸드폰 볼륨 버튼을 누른다. 진동이 다시금 잔잔해진다. 강진 후에 여진이 계속 울린다고 했는가. 다시금 허벅지를 타고 진동이 나를 흔든다. 허벅지의 핸드폰을 꺼낸다. 검정 화면 위에 놓인 그 이름. 누나.
차단할 수도 차단하지 못한 그 이름. 전화 수신버튼을 누른다.
"왜?"
"왜 전화를... 맨날 이렇게 안 받냐. 언제 와?"
"아... 오늘 친구들이랑 농구하기로 했는데?"
"닥치고 바로 집으로 와"
"아 약속 있다니깐"
"집에 오라고!!!"
한숨으로 시작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커지다 못해 폭발해 버렸다. 전화를 하고 있는 실시간으로 난처함으로 굳어가는 나의 표정을 본 친구들은 나를 뒤로 하고 농구장으로 향했다. 젠장.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집착적인 연락이 나의 학교생활도 망치고 있었다. 이대로 망쳐갈 순 없었다. 어제도 그 고생했는데. 핸드폰을 끄고 농구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정시퇴근, 엄마는 3교대 근무이지만, 이브닝 근무만 제외하면 집에 모두 있는 시간인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내게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 누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6시만 되면 울리는 전화. 그 전화를 몇 차례 무시했었다. 전화를 무시하고 늦게 들어갈 때면 집 밖에서 배회하고 있거나, 어제와 같이 사고를 치거나, 아니면 오늘 지금 내가 보는 것처럼 집에 도착하자마자 헝클어진 머리와 날이 선 눈빛으로 내 방으로 들어와 내게 욕을 퍼부어댔다.
"시발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부모님 내 방에 오셔서 누나를 말리기 전까지 반복된다. 반복되면 익숙해지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나 때문이라고 울부짖는 그 모습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서 더 이런 것일까? 이렇게 미쳐간 게 나 때문이라고 하는, 어쩌면 지금까지 나의 모습의 결과는 나를 원인라고 확신하는 듯한 그 목소리가 시리다 못해 차가웠다. 익숙해지지 않는 차가움이다.
찝찝함이 입가에 가득 남는다. 씻고 조용해진 누나 방으로 들어간다.
"누나 미안해. 빨리 들어올게..."
잔뜩 풀이 죽은 강아지 마냥 서있는 꼴이 우스웠던 탓인지, 누나가 손짓으로 말했다. 이리 와. 그 손짓을 따라 누나의 머리맡으로 향했다. 머리에 따뜻한 온기가 드리운다.
"철수야. 누나가 미안해. 난 너밖에 없는데 미안해 누나가. 누나가 항상 지켜줄게"
지켜줄게. 어렸을 적부터 내게 누나가 했던 말이다. 2년 전에 누나가 그 말을 내게 했다면 "그래, 고마워"라는 말이 바로 나왔겠지. 하지만 2년이 지난, 그러니깐 누나가 이상해지기 시작해지고 나서 지금 마주한 그 말은 내게는 너무 기이한 말이었다. 지켜준다니. 그녀는 나도 미치게 파멸로 이끌고 가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는 것인지. 이제는 친구도 건강도 괜찮은 내가 오히려 그 말을 하는 그녀 말고 걱정하고 무서워할 게 없는 것을 모르는 듯한 그 말이 너무 기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