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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스파거스 Oct 22. 2024

Satori, Bodh, Realization(3)

    상상만큼 더러운 동물은 없다. 매일 나에게 연락 오는 그리고 사고를 친다고 친구들이 들은 내 누나는 괴물 그 자체였다. 한 번도 보인적 없는 그녀의 외모는 녀석들의 상상력이 동원된 후 겉잡을 것 없이 괴물이 되었다. 그 말을 처음엔 부인하다 마차 부인하지 못했다. 나의 침묵의 그 녀석들의 상상력에 가미가 되었고 동작구 추녀, 미친년이라는 대상을 만들었다. 그때 내가 대응을 했으면 어쩠을까? 그래도 나의 누나인데.


    비가 내렸다. 장마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기후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몰아왔다. 소나기가 어찌나 강하던지 딱딱하던 담임선생님도 오늘은 조심하 가라고 당부했다. 애처롭게 우산이 없었다.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후 요 며칠 사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비바람에 늦어지는 학원버스를 기다렸다, 나 혼자 집을 가야 했다. 이 비바람을 올곧이 맞을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내가 피해 갈 만한 비바람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녀는 오후 근무인 것을 까먹었다.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퇴근준비를 하고 있던 아빠가 데리러 오겠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다행이다. 그 순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야?"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빠 차 타고 가려고"

"뭐...? 내가 데리러 갈게"

"아니 아빠가 온다고 했어. 그리고 지금 비 너무 많이 와 오지 마."

"내가 데리러 간다고!"

"왜 그래 또"


    한 마디 하려 했지만 전화는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지금은 받을 수 없다는 여자의 목소리뿐. 설마 오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교문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나 지났을까? 늦어졌던 학원버스가 저 멀리 보인다. 친구들이 떠났다. 떠나던 친구들이 학원버스 옆에서 우두커니 섰다. 우두커니 무엇인가 보고 있었고 표정으로 봐선 엄청난 것을 본 게 분명하다. 이상하게 그 눈빛이 조금 뒤 나를 향했다.


뭐?


    그 녀석들의 눈빛이 나를 다시 지나갔을 때, 그 지나간 자리에 헝클어진 머리와 장우산을 지팡이처럼 들고 슬리퍼는 발목에 끼여있는 걸인이 보였다. 그 걸인은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졌다. 누나였다. 다 젖은 머리카락, 뛰어오다 반쯤 벗겨진 슬리퍼 때문에 잔뜩 더러워진 맨발의 누나. 누나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지만 내 귀는 어느 때보다 밝았다.


"와..? 봤어?"

"진짜 철수 누난가 보네? 대박..."


    빗소리 귀를 기울여도 친구들에게 빵빵 대는 학원 버스 소리에 집중해도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야, 야!"


    웃음소리가 끊길 무렵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건넨 후 내 손을 이끄는 그 손을 뿌리쳤다.


"뭔데?"

"뭐가?"

"아 아빠가 데리러 온다 했는데 왜 오는데!"

"..."

"왜 그러는 건데, 왜 자꾸 내 인생 망치는데!"

"..."

"아니 미칠 거면 혼자 미칠 거지, 왜 나까지 미치지게해? 내가 뭐 잘못했어? 뭔데 뭐 때문에 이 난리인데. 지켜준다며? 뭐로부터 지켜? 지금 나 망치고 있는 거는 누나인데 뭐로부터 지키냐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뭘 알아 뭘! 그냥 누나 없었으면 좋겠어. 제발 내 인생에서 꺼져!"

"..."


    지나친다. 지나치고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 뛰었을까? 이윽고 뒤에서 소리가 났다.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뭔 소리야 시발..."


    시간당 50mm라고 말했던 비는 밤이 될수록 시간당 100mm 수준으로 내렸다. 어찌나 많이 내렸던지 언덕 아래 있던 K은행 ATM이 잠겼고, 어떤 이는 지하에 잠을 자다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렇게 사나웠던 날, 그날 누나는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가 온 것은 다음날 언제 비가 그렇게 왔냐는 듯 해가 쨍쨍한 토요일 오후였다. 오전 근무 마치고 누워있던 엄마의 핸드폰 전화를 대신 받았다. 이 순경이다.


"어 철수구나? 엄마는 어디 가셨니?"

"아니에요. 옆에 누워있어요. 왜요?"


    알고 있다. 전화가 온 이유를. 단지 평소보다 늦게 왔을 뿐.


"엄마 좀 바꿔줄래?"


    전화를 건넸다. 평소에도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았던 탓인가. 이 순경을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TV에 눈을 고정할 뿐 요동도 없다. 리모컨을 슬며시 주워 영화 채널로 돌렸다. 용암 속으로 들어가는 터미네이터가 보인다.   I WILL BE BACK. 명장면에 틀다니. 감탄을 하고 있던 찰나 엄마의 눈이 TV를 떠났다. 동시에 손이 떨렸고 다음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이윽고 전화가 마무리 됐다. 겉옷을 입고 차키를 챙기는 엄마를 보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가야겠다. 


"같이 가자"

"아니. 너 오지 말고 집에 있어. 아빠 연락 오면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하고."


    전화를 받고 5분도 안돼서 집을 나갔다. 평소와 같은 패턴의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그와 상반되는 다른 반응에 적잖이 긴장되었다. 예삿일이 아님이 분명했다. 항상 그랬듯 나에게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 입 다물어! 그 입! 너만 입 다물면 돼! 응? 우리 가족이잖아.” 

“으…응. 알겠어"


    엄마는 누나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그다음 마지못해 대답하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가족 뿔뿔이 흩어지고, 엄마 이혼하는 꼴 보고 싶어?”


    조심히 들어오려다 중문에 발이 부딪혔다. 쿵. 그 소리에 이윽고 집에 조용해졌다. 


“엄마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무것도 아냐. 아무튼 조용히 사는 게 최고니까. 일 만들지 말고. 엄마는 지금이 좋다. 알았지? 

 엄마 갔다 올게"


    그 말을 뒤로 엄마는 오후 근무를 위해 출근했다. 쾅. 문이 닫혔다.


"누나 무슨 일이야? 뭐 잘못했어?"  

"..."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갔다. 훌쩍이는 소리로 집 안이 가득 찼다. 


"에휴 그러게 엄마 말 좀 잘 듣지, 뭐 하다가 그렇게 혼나냐"


       다 들리게 이야기를 한 후, TV를 켠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일을 알지 못했다. 지금처럼 우리 가족은 내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 또한 묻지 않았다. 가족 일이니깐. 정확히는 내 일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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