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꽃아 넣는 것을 좋아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 집어서 상자에 넣으려던 것부터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까지 콘센트에 넣을 정도로 집어넣는 것에 광적이었다. 언젠가는 콘센트에 젓가락을 집어넣어 죽을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그는 쉬지 않았다. 이윽고 집에 모든 콘센트는 문을 닫았다.
어쩌면 이런 성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용산에서 전자제품 도매상이었던 아버지는 고장 난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고치는 일도 같이 하셨다. 퇴근할 때가 되면 어쩌면 난제에 부딪혀버린 컴퓨터를 잔뜩 분해하고 꽃아 댔다. 이리저리. 그 모습을 뒤집을 때부터 아니 눈을 뜨고 "엄마, 아빠"를 부르기 이전부터 봤으니 앞의 행동이 이해가 될 수밖에.
그런 아빠가 철수는 좋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여인이 있었다. 철수의 엄마였다. 분해하고 꽃아 넣어 완성하고 어쩌면 모든 고장 난 것을 고칠 수 있어 보였던 아빠였지만, 엄마의 마음은 고칠 수 없었다. 철수가 7살 무렵이었다.
그 무렵부터 철수는 아빠의 상가로 같이 출근을 했다. 거기서 손님이 고장 난 물건을 같이 고치기 시작했다. 대부분 열어보면 케이블이 손상이 갔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부품이 있었고, 심지어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팬이 안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철수 아빠가 철수를 불렀다.
-철수야. 이리 와봐.
철수 아빠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어찌나 느리던지 바탕화면에 놓인 컴퓨터 버튼까지 화살표가 가는데 1분이 걸릴 정도였다. 화살표가 컴퓨터 그림에 갔을 때 아빠는 오른쪽 버튼을 눌러 속성을 켰다. 올라온 화면에는 빨간 도넛 모양이 나왔다. 끝에 파란색 문양이 보이긴 했지만 거의 묻었다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가 이렇게 느린 거는 저 사람이 용량을 다 채워서야. 용량만 줄여버리면 이 컴퓨터는 1년을 더 쓸 수 있겠지. 그럼 철수 너는 어떻게 할래?
-음... 용량을 줄이면 된다면서요.
-용량을 줄이는 게 뭔지는 아니?
-아니요?
-용량을 줄인다는 거는 컴퓨터에 내가 만들어놓은 파일을 없앤다는 거야. 예를 들어맞다. 꽉 차버린 철수 장난감통에 있는 안 쓰는 공룡들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근데 저는 그 공룡들을 좋아하는걸요? 가끔 노릭도 하고.
-그래. 아마 이 컴퓨터 안에도 철수 공룡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할래?
-음... 모르겠어요.
-간단하게 생각해 봐. 장난감 박스를 하나 더 사면 공룡도 안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맞아요.
-얘도 똑같이 해줄 거야. 파일은 그대로 볼 수 있게 두고, 새로운 장난감장자를 달아주는 거지.
철수가 보조기억장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 그 순간은 철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철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생각보다 심심했다. 컴퓨터를 열어보거나 전자제품을 고치는 것에 비해서는 이해하기 쉬웠다.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빨리 집으로 가서 어제 고치는 것에 실패했던 작품들을 만지고 싶었다. 그 의지는 아빠한테 번번이 제지당했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너는 천재라며. 그 말이 나쁘지 않았다.
아빠 말을 잘 듣다 보면 어쩌다 한 번씩 제품 수리를 하게 해 줬다. 꽤나 솜씨가 좋고 소문이 나서 신비로운 케이스들의 작품들이 종종 들어오곤 했다. 키가 아빠의 키를 넘어갈 때 전자제품 시장도 변화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변화라고 하나 꼽자면 HDD의 쇄퇘, SDD의 도약.
4배 더 빨라진 저장속도, 대신 2배 작아진 용량. 그 제품을 본 철수의 아빠는 욕했다.
-이거 돈 뜯아내려고 용량도 같이 줄여버렸네. 도둑놈 같은 놈들. 그래도 나도 팔아먹는 놈이니깐 좋은 거지? 그렇지 철수야?
생각의 꼬리를 물다가 깨달은 모양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어쩌면 그 순간 철수는 아빠의 HDD 즉, 저장 공간, 처리속도에 문제가 조금씩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요즘 개인적으로 좀 바쁘다 보니 제대로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혹여나 기다리셨던 분들이 계시면 불편을 드려서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