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발년들이 먼저 그랬다고, 아저씨 경찰 아니지? 그치? 그렇게 상황 파악도 못하면서 어떻게 경찰 하는 거예요? 이 정도면 나도 경찰 하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고약한 냄새의 단어들이 내 귀를 타고 들어온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을 알려주듯 반갑게 마치 드디어 왔냐라는 식으로 쳐다보는 순경들. 걸음을 오른쪽으로 그녀에게는 왼쪽 방향으로 틀자마자 그 고약한 냄새의 단어를 이야기하는 여자도 익숙하듯 나를 쳐다본다. 아이러니하게 이 여자는 왜 왔냐라는 식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 순경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철수 왔구나, 부모님은?"
"아, 지금 엄마가 퇴근하고 오는 중이셔서 제가 먼저 왔어요"
"그렇구나 일단 누나 좀 말려봐. 자꾸 소리치고 그러니깐 우리도 일하기가 힘들다. 비타 500 괜찮지?"
내 취향이 비타 500인 것은 이미 간파당했구나. 드디어 짐 덩어리를 치워버렸다는 듯 훌훌 뒤를 돌아 냉장고로 가는 이 순경을 뒤로하고 누나 옆으로 갔다.
"이번에는 뭐 때문이야?"
"하.. 다시 설명하기도 힘들다. 누나 힘들다. 엄마는?"
"아까 8시에 퇴근했다고 하니깐 이제 곧 도착할걸?"
"하... 시발"
한숨소리에 깊게 베여있는 소주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뭐... 익숙하다. 익숙하다 못해 이게 원래 누나의 냄새였는 지 헷갈릴 정도다. 코에 느껴진 그 지독한 냄새를 따라 내 눈이 움직인다. 블라우스는 찢기고 단추는 간신히 가슴을 가릴 수 있는 정도로 뜯겨있었고, 검정 바지에는 온통 남들의 신발자국으로 가득했다. 안 그래도 붉은 입술은 피가 덧대어져 80년대 립스틱을 바른 마냥 색붉은색을 보였으며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있다.
자연스럽게 다음 내 시선은 반대편 여자 무리에게 향했다. 3명의 여자들은 모두 요즘 범죄도시에 나왔던 초롱이 여자친구처럼 생겼다. 길게 그리고 두껍게 그려진 마스카라와 짧다고 끼이다 못한 수영복과 같은 크롭티, 그리고 뱀 모양 클러치까지. 셋 중 한 명은 끊임없이 훌쩍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훌쩍이는 여자는 옆에 있는 여자들과 묘하게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올곧게 그려진 아이라인 대신 잔뜩 번져버린 아이라인과 한껏 번진 립스틱은 조커를 연상시켰고, 이리저리 많이 상해있는 팔다리는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적 태권도장에 다닐 때, 옆 태권도장 애들과 패싸움이 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왜 내가 패싸움에 꼈는지 모른다. 싸움에 이유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답할 수밖에. 그저 "옆 태권도장 애들이랑 싸울 거니깐 철수 너도 나와라. 우리 편이잖아" 그 말을 올곧이 믿었다는 답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큰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상대는 10명, 우리의 편이 4명이었다는 것, 태권도장의 겨루기와 다르게 1 대 1이 아닌 다 대 다, 그리고 기울어진 숫자의 균형을 맞추면서 싸울만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문득 맞다가 주위를 살펴봤다. 어느새 남겨져서 밟히고 있는 거는 나뿐이었다. 앞만 보고 남만 믿고 달려들었던 탓일까, 친구들이 도망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순진하게 맞고 있었다.
옆 태권도장 아이들이 슬슬 질려하고 떠나려던 찰나, 누나가 나타났었다. 누워있는 나를 보고 눈이 돌아간 나의 누나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10명이지만 가장 강력해 보이는 대장을 향해 달려가선 땅에 눕히고 미친 듯이 때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웠던 건지 9명의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거나 도망갔다. 그중 정신을 차린 몇 명이 나를 일으키고 '누나 좀 말리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뱉었다. 그 어처구니 없는 말에 동조될 정도로 누나의 기세는 무섭고 매서웠다.
"누나.."
내가 조심스럽게 뒤에서 부르자 녀석의 코피를 시뻘건 주먹에 가득 칠한 누나가 나를 향해 돌아봤다. 그 모습이 흠칫해서 뒷걸음 치려는 사이 누나가 주먹을 펴고 나의 손을 잡았다.
"집에 가자"
"응"
"다시 내 동생 건드리면 다 죽일 거야"
녀석들에게 확인사살까지 끝낸 누나가 내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기 전 수돗가에서 자신의 피 묻은 손과 깨끗해진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철수야, 어디 가서 싸우면 한 사람만 죽일 듯이 패버려. 그럼 다른 애들도 무서워서 너 안 건드릴 거야"
"그게 안되면 그럼 어떻게 해?"
"그럼 누나 불러야지"
씩 웃으며 가는 길에 쌍쌍바 하나씩 나눠먹으면서 집에 갔는데 그 생각이 문득 들어 웃음이 나왔다.
"뭘 웃냐 병신아"
언제 내 얼굴을 관찰했는지 누나가 말했다. 내 모습을 본 것이 누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반대쪽 여자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지껄였다.
"야 웃냐? 사람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웃냐고. 동생 새끼도 아주 똑같네 미친 새끼들!"
"아 그게 아니고..."
대충 사과하려고 마무리하려 했는데 그 말에 누나가 다시 폭발했다.
"이 새끼들이 내 동생한테 뭐? 미친놈? 저 새끼들 오늘 다 뒤졌다"
달려드는 누나를 막기 위해서 나를 비롯한 비타 500을 까고 있던 이 순경까지 달려들었다. 엉망진창인 그 상황 속이 정리되자 엄마가 들어왔다. 경찰서에 들어오자마자 익숙한 패턴이듯 순경들에게는 비타 500 박스를 반대편 여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누나와 내가 앉아있는 사이 엄마는 들어온 지 30분 만에 일을 처리했고,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뒤를 바라보며 누나와 나란히 걷는다.
"야 너도 어디 가서 싸우면 한 사람만 죽일 듯이 패버려. 아까 다른 년들 표정 봤지? 크크크 하... 세상 살기 좆같다."
아까 흥분했던 탓인지 고약한 소주냄새에 위액 냄새까지 섞여버렸다. 비슷한 멘트 속 내 누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