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런 것에 중독이 되어가는 듯한 내가 미쳤다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자. 손녀뻘들이 나오는 방송들을 하루종일 본다니. 내가 미친 게 분명하다.
그러면서 태블릿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다시금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관경들이 이어졌다.
TV의 코로나 19 사망자 수, 그걸 보는 간호사들과 우리들. 그리고 점점 미쳐가는 사람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이 맞았던 A는 결국 50년이 넘은 지나간 빨갱이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완연한 치매 노인이 되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수척해진 얼굴이 보여주듯 폭삭 늙어버린 몸 때문에 격정적인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엄마만 찾는 노인이.
문득 나도 저런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웠다. 두려움이 나의 걱정이 나를 사로잡을 때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 말소리라도 들으면 조금이라도 안정이 될 것 같았다. 지금 남아있는 내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미치지 않고 삶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뚜루루.
"네,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 때문이냐는 아들의 말이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 가슴을 울렸다. 아무 일 없으면 전화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지금 내 아이에게 불평이나 하려고 전화를 건 걸까? 그럼 이제 나는 누구랑 이야기하지...?
"응 아니다. 잘못 눌렀다. 어서 쉬어라"
전화를 마치니 공허함이 밀려왔다.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는 것 같은 감정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조금씩 잠식하다 어느 순간 나도 A처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서둘러 침상으로 뛰어가 태블릿을 열었다. 이젠 보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어쩌면 보고 싶었던 '아프리카 TV'를 다시 열었다.
검정 화면에 생그러운 20대 청년의 얼굴이 나온다.
"와, 벌써 채팅창이 엄청 빠르네요! 사막여우님, 엄크님, 철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죠? 저도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과 소통도 많이 하면서 재밌는 시간 만들어볼게요! 다들 채팅 많이 쳐주실 거죠?"
나도 아직 소통을 할 대상이, 어느 그룹에 속해있다는 편안함이 나를 잠식하고 있던 공허암을 감싸 안았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미치지 않게 해주는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은 꽤나 반복됐다. 마지막 알량한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나 자신의 규범과 살고 싶다는 의지가 끊임없이 엉켜 붙었다. 엉켜 붙은 두 줄기 사이 항상 빛을 바라고 자라나는 것을 살고 싶다는 의지였다. 누가 볼까 두려워 숨어서 보다 들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수군댔다.
어떤 이들은 '야동 순재' 같이 귀여운 면이 있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취향 존중한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노망 난 노인, 드디어 미쳐버린 3 병동 할아버지. 등등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많이 생겼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 눈치가 보였지만 어느 순간 그 눈치도 없어졌다.
'야동 순재'라고 부르는 간호사에게는 그동안 방송에서 못 알아들었던 단어들을 물어봤다. '틀딱'을 나 같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자만추', '레전드' 등등 궁금했던 단어들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할아버지, 방송 뭐 보세요?"
"어? 그냥 맨 위에 있는 거 눌러서 보는데?"
"제가 재밌게 보는 거 있는 데 그거 추천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내 태블릿을 가지고 가서 이리저리 화면을 눌렀다. 그 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현란한 손놀림은 마치 피아니스트 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 몇 개를 상위에 나오게 해 놓은 다음 간호사가 말했다.
"어 근데 로그인이 되어있는 거 같아요. 할아버지가 직접 로그인하신 거예요?"
한 적이 없다.
"손주가 쓰던 거 받은 건데, 아마 손주꺼인가 보네"
"아 손자분이 쓰던 거구나. 손자분이 즐겨보던 게 계속 위에 나왔을 거예요. 제가 추천한 거도 같이 올려놓았으니깐 편하신 대로 보세요"
지금까지 위에 있던 것은 손자의 취향이었다. 아들 녀석은 손자가 무슨 생각하는지, 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쩌면 손자를 내가 더 잘 알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아들의 모습과 취향을 오로지 이어받은 손자의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빠랑 취향이 똑같구먼..."
방송을 보다 보니 어느덧 '아프리카 TV' 자체에 익숙해졌다. 내 자리에 와서 노망 났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과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모두에게 '아프리카 TV'를 광고할 지경이었다. 그중 몇은 나를 따라 태블릿을 받아와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교육을 해달라고 했다. 내가 배운 모든 것을 전파해서 입문시켰다. 사람들은 '미친 철수 할아버지의 무리들'이라 우리를 통틀어 불렀다.
시간이 지나고 코로나 19가 발생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었다. 놀랍게도 그 미친 무리들 중 이탈자는 없었다. 죽음은 미친놈들을 피해 간 것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배우면서 다시금 행동하게 된 두뇌활동이, 잃어버린 다시 되찾은 소통이, 우리를 살아남게 했다.
수요일 15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강당에 노인들이 앉아있다. 내 위치는 이제 청중이 아닌 맨 앞에 나와있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태블릿을 움직였다.
"자, 이게 아프리카 TV에요"